安鍾範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일자리는 시장에서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다. 일자리 예산보다는 기업의 투자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얘기다. 더구나 오래 가는 안정된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만든다. 일자리와 관련해서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이처럼 하는 이유는 이런 당연함을 우리 정부는 늘 잊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일자리 만들기에는 정부가 나서서 최대한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참여정부 출범 후 매년 14% 이상 일자리 관련 예산을 늘려 왔다. 올해만도 52만7000명을 대상으로 1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청년실업,사회적 일자리,취약계층 일자리의 세 부문에 걸쳐 87개 사업을 17개 부처가 앞다퉈 벌이고 있다. 마치 이제는 '일자리다'라는 출발신호에 모든 부처가 일제히 뛰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청년들이 해외활동 경험을 쌓게 해서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사업 예를 들어보자.각 부처별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노동부의 전문직 해외취업지원,중소기업청 해외시장개척요원 양성,정보통신부의 해외인터넷 청년봉사단 파견,산업자원부의 무역인력양성 사업이 그것이다. 이들 사업은 부처 간 협조를 통해 연계가 추진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취업지원 효과도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우선 일자리에 관한 한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원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첫째,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수요자인 기업이 잘돼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루빨리 지금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성장궤도에 다시 진입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일자리 대책이다. 예전에 비해 성장에 따른 고용탄력성이 낮아졌더라도 성장만한 확실한 일자리 대책은 없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지식기반서비스업,고용창출유망사업,사회서비스업 등이 발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 공급측면에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일을 제때에 제대로 제공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재교육,자활사업 등 근로자들의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와 같이 정부가 교육훈련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참여하라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이른바 '맞춤형 교육훈련'을 통해 근로자의 유형별로 최적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적어도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일자리 대책사업이라면 철저하게 사전에 사업 타당성을 점검해 부처 간 중복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시행된 사업은 사후적으로 평가해서 투입하는 돈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넷째, 일자리 관련 정부의 예산사업자체는 정부가 시작하더라도 운영은 민간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야 일자리를 구하는 국민에게 더 필요하고 오래갈 수 있는 일자리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정부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제때 제대로 알려주어 국민들이 미리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즉 일자리관련 정부 통계를 구축하고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자리 만들기'는 선거 때만 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언제나 '일자리 몇 만개를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약속들이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는데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루빨리 일자리를 정치권에서 찾아와 시장으로 돌려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고 오래가는 일자리가 '꾸준히' 그리고 '조용히'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