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배경은 초등학교다. 주인공은 커닝 등 비행을 일삼는 반장(석대)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무심한 담임은 전학생의 질투쯤으로 여기고 무시한다. 아이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선생님의 방관 아래 영원할 것 같던 석대의 횡포는 그러나 담임이 바뀌면서 끝장난다. 초등학교 얘기지만 중·고교에서도 담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많은 아이들이 담임에 따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도 하고 1년 내내 힘들어하기도 한다. 아이 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총 24명의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 가운데 남자는 다섯 명도 안된다. 아들은 중·고교 6년 동안 한번도 남자 담임반에 속하지 못했다. 여자 선생님이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다. 좋은 분이 더 많았다. 아들의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반 아이들 모두를 친자식처럼 보살폈고,고등학교 담임 한 분은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의 일상을 이해하고자 아이들 시간표대로 생활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을 갓 졸업한 초임 여교사가 다 큰 남자 고등학생들을 다스리지 못해 쩔쩔매는가 하면,초년의 이런 경험 탓인지 30대 미혼 여교사가 남학생들의 심리와 특성을 파악하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체벌로 누르려 든 통에 반 아이들 상당수가 담임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봤다. 남학생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는 그 선생님 반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주말이면 야외학습도 하러 가는 남자 담임반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교단의 여초(女超) 현상은 세계적 추세라지만 우리는 특히 심각하다. 2005년 여교사 비율은 초등학교 71%,중학교 62.3%,고등학교 38.1%다. 사정이 이런데 올해 신규 채용된 중등교사 중 남자는 19.7%밖에 안된다고 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10년 후엔 대도시 중·고교 여교사 비율이 70~80%에 달하리라는 전망이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 남자 선생님이 없다시피 한 초등학교도 있고,경기도 일산처럼 여자 선생님이 60% 이상인 고등학교도 있다. 남자 선생님이 없어도 가르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초·중·고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도 사귀고 성(性) 역할도 배우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또 남녀 모두 같은 성이 아니면 털어놓기 어려운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다행히 교대엔 남자 지망생이 늘어난다고 한다. 올해 서울교대의 남자 신입생은 29%로 성비 할당제(25%)를 넘어섰고,전주교대도 36%로 지난해(31%)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성비 할당제에 안정적 직장 선호가 겹친 덕이라고 한다. 교사는 좋은 직업이다. 박봉에 제멋대로인 아이들 때문에 고단하다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여전히 착하고 직업은 안정적이다. 1년에 석달 가까운 방학이 있고 정년 전에 명예퇴직을 하면 연금에 퇴직위로금까지 받는다. 결혼정보업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남자 교사가 배우자감의 2위를 차지,금융직과 일반사무직보다 높았다고 한다. 모쪼록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고교에도 남자 선생님이 늘어났으면 싶다. 반반까진 바랄 수 없어도 남자아이들이 중·고교 6년 동안 두어 번만이라도 남자담임을 만났으면 좋겠다. 임용고사의 경쟁이 치열해져서 선생님의 수준도 한층 높아지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