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부터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개성에 이어 신의주와 남포를 삼성 등 한국기업 자본에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개성에 한국 기업공단이 들어선 데 이어 신의주와 남포까지 열리게 될 경우 북한의 개방은 급물살을 타게 될 전망이다. 북한의 이 같은 심경 변화는 미국의 금융제재에 따라 부시 정권이 교체될 때까지 3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과 함께 중국이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中,"30억달러 줄테니 성의 보여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대규모 대북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북한의 핵심 무역금융망이 일시 마비되고 북한 당국이 충격에 빠졌을 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믿을 만한 중국 정보원'을 통해 확인한 액수는 30억달러다. 이를 다 현금으로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다양한 프로젝트성 지원이 제안됐다. 중국은 대북 무상원조와 저리융자를 계속해왔으나 이 같은 규모는 전례가 없었고 최근 몇 년간은 그나마 줄어드는 추세였다. 당시 중국의 지원에는 평소와 다른 점이 또하나 있었는데,북한의 개방이라는 전제조건이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이 북한에 은근히 전달한 메시지는 북한이 개방을 얼마나 성의있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지원이 10억달러 규모가 될 수도 있고 30억달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한 까닭은 중국의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목표의 실현을 위해 둥베이 3성 개발이 다급하고,이를 위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개방이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北,"3년을 버텨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의 설득을 받아들인 것은 중국의 지원을 따내기 위한 고육책이 아니라 스스로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CD파트너스의 동용승 부사장(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팀장)은 "BDA 사건이 북한 무역금융망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한 것 같지는 않지만,북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부시 정권이 교체되기 이전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3년 후 미국정권이 바뀔 때까지 중국과 남측의 지원을 받아 버틸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개방은 필수적이다. BDA사건은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종용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전 김일성 종합대 경제학부 교수)은 "북한은 중국 내륙으로 무역금융 계좌를 이전하고 있거나 이미 이전을 끝냈을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이 BDA사건의 충격을 흡수하는 데 바람막이가 돼주었다"고 말했다. ◆北,"삼성 들어오면 개발권 주겠다" 북한은 중국의 설득과 내부 필요성에 따라 신의주 특구 재추진과 남포 공단 조성 계획을 세운 후 개발 지휘권을 미끼로 삼성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왜 삼성일까. 지금까지 대북사업을 독점하다시피해 온 현대아산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자금력,추진력,영향력 면에서 모두 바닥을 드러냈다. 2000만평 개발이 추진 중인 개성공단의 경우 시범단지 개발까지는 현대아산이 맡았으나 100만평 추가 분양 사업부터 주도권이 이미 한국토지공사로 넘어간 상태다. 개성공단 관계자는 "1990년대 초 이래 대우가 남포공단을,현대가 개성공단 조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그룹이 해체되거나 분리되면서 대규모 대북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이 삼성밖에 남지 않았다"며 "북한은 삼성을 끌어들여 한국 기업에 의한 대북 투자 경쟁이 일어나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기,도로,용수 시설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고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북한의 러브콜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삼성 관계자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규모 북한 투자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