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핀란드 국민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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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신 < 駐핀란드대사 >
핀란드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두 번 운다는 일화가 있다.
부임발령을 받고 가기 싫어 울고 임기가 끝날때면 살기 좋아 떠나기 싫어 운다는 얘기다.
핀란드는 북유럽 동쪽 귀퉁이에 붙어 있어 겨울이 길고 추워 '유럽의 시베리아'로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황야의 '외로운 늑대(Lone Wolf)'처럼 강인한 생존력으로 척박한 환경을 딛고 2차대전 이후 반세기 만에 유럽 최고의 복지국가로 거듭났다.
이처럼 핀란드가 각광받는 이유로 △국가지도자들의 남다른 리더십 △건전한 비판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 정치권 △기업들의 끊임없는 혁신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핀란드에 살다보면 진짜 국가경쟁력의 힘은 국민 개개인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헬싱키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여대생을 초빙해 대사관에서 핀란드어를 배우고 있다. 한달 후 강사료로 200유로(약 25만원)를 주자 이 스무살짜리 여대생은 소득신고를 해야 한다며 소득증명서를 끊어달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우리 대사관 동료직원들 가운데 누구도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으니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던 이 여대생의 사고방식을 보면서 저게 바로 핀란드 경쟁력이구나 하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핀란드에서는 길거리의 영세 노점상들도 소액 현금거래 영수증을 일일이 발급해주고 신용카드를 받아준다.
이와 같은 국민성때문에 명예박사 학위를 주고 받는 것도 '뇌물'로 간주한다.
유명 인사라는 이유로 잘못 줬다가는 명예박사가 '멍에박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핀란드에는 또 상대방의 인격을 침해하거나 의견을 강요하는 '명예폭력(Honor violence)'이라는 게 있다.
눈앞에 상대방이 있든 없든 인격을 모독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터지면 비난보다도 머리를 맞대고 조용 조용하게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찾는다. 오죽했으면 주변국 스웨덴과 러시아 사람들이 핀란드에 뉴스가 거의 없어 '거기 사람이 살고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거창한 국가비전과 정책 못지않게 국민 개개인에게서 풍기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진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