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 딜로이트투쉬 파트너 > 80년대 초반 내신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대학입시에서 경쟁의 범위가 최소한 국가단위였다. 목표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반에서 몇 등,학교에서 몇 등이냐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몇 등을 하느냐가 중요했고,같은 반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아무리 많아도 서로에게 적개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노력해서 전국 성적을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신이 도입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내신 반영비율이 점차 높아져 가면서 경쟁의 범위는 국가단위에서 점차 학교단위 학급단위로 축소돼 갔고,이제 교육부가 2008년 도입을 예고한 내신등급제에 이르러서는 눈앞에 있는 친구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파멸적 경쟁을 강요하는 지경까지 왔다. 또한 이는 경쟁의 범위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는 21세기의 현실과 거꾸로 간다는 측면에서도 시대착오적이다. 정부당국은 소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통한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명분으로 2008년 대입부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핵심은 수능을 점수 대신 9개 등급으로 나누고 내신에 9등급의 상대평가를 도입하면서,내신의 반영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애써 공부하고 돈까지 들여 치른 수능을 점수가 아니라 등급으로 부여해 변별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지만,이 제도의 근본적 해악은 입시를 위한 경쟁의 범위를 국가나 지역단위도 아닌 일개 학교와 학급 수준으로 축소시킨다는 점에 있다. 이 제도 하에서 경쟁의 범위는 학교친구로 축소된다. 학교간 학력차나 개인의 능력차도 무시되고 매일 만나고 생활하는 눈앞에 있는 친구가 진학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주요 경쟁자가 된 것이다. 입시란 자신의 능력보다는 눈앞의 상대를 누르고 올라서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내신등급제가 적용되는 학년의 교실에서는 시험기간에 친구의 노트와 책을 훔치고 버리는 사건까지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수행평가를 잘 받기 위한 예체능 과외까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명분하에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왜곡을 심화시키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소위 교육전문가들이 경쟁의 범위를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지만,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서 경쟁의 범위는 협소한 지역과 국경의 개념을 뛰어넘어 전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칠레의 포도와 노르웨이산 연어가 슈퍼마켓에서 나란히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환경에서 우리 농어민의 경쟁자는 바로 칠레의 과수업자와 노르웨이 양식업자다. 컴퓨터 고장을 문의하러 콜센터로 전화를 걸면 나도 모르게 싱가포르나 중국으로 연결되는 시대에서, 국내 콜센터 사업자의 경쟁자는 해외에 있는 콜센터 사업자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세계를 겨냥하는 가수 비와 보아의 경쟁자가 국내로 한정될 수 없는 것은 뮤지컬 명성황후와 난타 같은 문화상품에 공통적이다. 히딩크 이후 우리나라에서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되려는 지도자는 경쟁의 범위를 세계로 넓혀야 했다. 축구 선진국인 유럽-남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지도자를 앞서지 않고서는 감독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듯 변해가는 현실을 반영하기는커녕 교육부와 일부 교육관련 단체는 글로벌 시대에서 경쟁하고 살아나가야 할 미래 세대에게 경쟁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혀 파멸적 경쟁을 제도화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신등급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당국을 보면 '교육부가 없어져야 교육이 산다'라는 말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신등급제를 도입한 당초의 목적은 좋은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선의의 목적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의 어떤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