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꿈이 선박 도장 명장으로 '이문옥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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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선행도장부에 근무하는 이문옥 반장(46). 회사 내에서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과학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통한다.
선박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장비를 수십 종 발명한 데다 거제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아마추어 화가이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대한민국 품질명장 대통령상을 받았다.
다재다능한 21세기형 '장인'의 표본인 셈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희망은 화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생님의 권유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뛰어난 소질을 보였지만 집안 사정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곧 그만뒀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열정과 끼를 감출 수 없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잠시 서양화보다 돈이 적게 드는 동양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더욱 악화된 가계 사정으로 포기해야 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용접직업훈련을 받고 1985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배치받은 분야는 당초 교육받았던 용접분야가 아닌 도장장비반이었다.
"그림과의 인연이 끈질기게 다시 찾아왔다고 느꼈습니다.
배에다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업무와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가 상당부분 비슷했죠.철판에 페인트를 칠할 때는 페인트가 동일한 품질로 잘 섞여야 하고 같은 두께로 균일하게 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선박 철판을 도장작업하면서 마치 예술작품과 만난 것 처럼 정성을 다했다.
동양화를 그리던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여기서부터 그의 '욕심'이 시작됐다.
"일에 열중하다보니 좀더 매끈하게 페인트를 섞는 장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대부분의 도장장비들은 외국산이어서 근로자들이 사용하기가 무척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 머리 속으로 기계 설계도를 그렸다 지웠다 해보기 시작했죠."
공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연구개발부에 소속된 것도 아니었지만 이 반장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장비 개발에 나섰다.
1990년부터 주말 휴일도 따로 없이 도장장비의 연구와 개발에 집중했다.
일부 주변 인사들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이유로 그를 보고 '미친놈'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이 같은 비아냥 속에서도 그는 7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도장스프레이,롤러붓,듀얼 피스톤 등 도장작업을 간소화하고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발명품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발명한 도장장비는 모두 22개.그는 이제 11건의 특허와 14건의 실용신안 등 25건을 등록한 명실공히 도장분야 최고 전문가다.
이 반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장비는 수용성 펌프(물과 페인트를 자동으로 섞어 구조물에 균일하게 뿌리는 기계).그가 3년 동안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고생 끝에 만든 제품으로 자식처럼 아낀다고 한다.
페인트 위에 모래를 분사하는 기계인 '넌 스키드(Non Skid) 펌프'도 개발,선박의 이동통로 등에서 발생하기 쉬운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 반장이 개발한 각종 장비들은 부산광안대로와 상암 월드컵경기장 영종대교 청담대교 방화대교 등의 주요 철골 구조물이나 교량 공사에 투입돼 인기를 끌었다.
국내 경쟁사들은 물론 미국과 일본 노르웨이 등의 도장전문가들까지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와 자문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측은 "이 반장의 장비 개발 덕택에 도장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됐고 매년 20억여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이 반장이야말로 회사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 반장은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10여년간 조선소에서 틈틈이 그린 200여점의 그림으로 사내 전시회를 열면서 회사 안팎에서 화가로서 공인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반 회의실과 휴게실 등에 환경미화용으로 100점을 걸고 나머지 100점은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작년에 금강산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금강산 산수화를 멋지게 그려 동료들과 언제든지 절경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이 반장은 더 많은 일을 꿈꾸고 있다.
그간의 숱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싶어서다.
"연내 선박의 밑판에 페인트를 칠하는 자동스프레이 장치를 개발하고,도장장비에 관한 책을 저술할 예정입니다.
특히 2003년 받은 품질명장을 디딤돌로 삼아 대한민국 기능인이 가장 염원하는 기능명장이 반드시 되겠습니다."
거제=김태현 기자 hyun@hank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