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공론화가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는데…." "언론에서 먼저 문제 제기를 해줘야 하는데…." 요즘 중앙부처 공무원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얘기다. 특정 현안과 관련,정부 대책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거의 예외없이 이런 답변이 되돌아온다. 미국 월가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연합의 KT&G 경영참여 요구가 본격화된 후 지분이 분산된 국가기간산업 분야만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상당히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는 그러나 "(이런 사안은) 국회에서 먼저 공론화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섣불리 나섰다가 일이 뒤틀릴 경우 뒷감당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대주주인 론스타가 일사천리로 일정을 진행시키고 있는 외환은행 매각도 마찬가지다.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의 적법성,대규모 매각 차익에 대한 과세 여부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일정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데도 정부는 지금껏 '간여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론스타보다 오히려 사는 쪽의 몸이 달으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도대체 (정부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지분 50%만 인수한다 해도 프리미엄이 10%면 4000억원을 더 줘야 하고,이는 환수 여부조차 불투명한 세금 규모와 엇비슷할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입니다."(한 금융회사 CEO) 정부는 매각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이 순간까지 여전히 '시장 자율'이란 명분만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부에 대해 '친(親)시장적'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정 은행을 편든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고 과당 인수경쟁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특정 은행이 인수할 경우 독과점에 해당되느냐에 대한 판단을 놓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간 볼썽사나운 신경전도 벌어졌다. 현재로선 '명분'(시장자율)도 '실리'(돈)도 다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다. 정부 경쟁력을 높인다며 공무원 수를 늘려온 참여정부의 후반기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김수언 증권부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