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 간 치열한 경쟁은 소비자로 하여금 싸고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경쟁은 어떤 경우에 생겨날까? 흔히 공급자의 숫자가 적으면 경쟁이 없는 독과점 구조이고,공급자의 수가 많을수록 경쟁이 치열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도 상당 부분 그런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단순히 공급자만 많다고 생겨나지는 않는다. 공급자의 숫자가 많아도 경쟁이 없을 수 있고,수가 적어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다. 서울시내에는 260개의 택시 회사가 있다. 또 택시의 숫자로 따지면 2만3000대나 된다. 그 많은 택시들이 서로 손님을 태우려고 할 테니 택시업계에는 치열한 경쟁이 존재할 법하다. 그리고 승객들은 백화점이나 할인점 못지 않은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택시가 그렇게 많은 데도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려는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친절한 기사 분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운일 뿐이다. 오늘날 택시 기사의 친절함은 경쟁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심성이 곱기 때문이다. 반면 할인점이나 백화점 같은 경우 공급자의 숫자는 몇 개 안 되지만 그들 간 경쟁은 치열하다. 롯데 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이 벌이는 경쟁,이마트와 까르푸,홈플러스 간 벌어지고 있는 경쟁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 덕분에 소비자들은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과 친절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점원들에게 친절교육을 시키고 어떻게든 자기 매장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그것이 경쟁의 참 모습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경쟁이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답은 소비자가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A할인점이 자기에게 불친절하게 대했을 경우 소비자는 A 대신 B를 택한다. 할인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소비자에게 대하는 태도에 따라 손님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른 할인점에 비해 매력적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택시업계에서 택시기사 또는 택시회사와 소비자 간 관계는 그렇지 않다. 소비자는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택시를 세울 수 있을 뿐 어떤 택시를 탈지 고를 수 없다. 택시회사나 기사의 입장에서도 손님에게 잘 해줘 봐야 별로 이익될 것이 없다. 그런다고 해서 손님이 자기 택시나 회사를 다시 찾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친절하고 좋은 서비스는 그저 운전기사의 선한 품성에만 맡겨질 뿐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할인점 업계의 경우 소비자가 경쟁자들을 식별할 수 있고 제품과 서비스의 차이에 대해 소비자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경쟁자의 숫자는 적지만 경쟁은 치열해진다. 반면 택시업계의 경우 소비자들이 좋은 공급자와 나쁜 공급자를 구별해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록 공급자의 숫자는 많지만 경쟁은 거의 생겨나지 않는다. 최근 파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택시 브랜드화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택시 회사별로 색깔을 달리해서 소비자가 택시를 골라 탈 수 있게 하는 것도 택시 브랜드화의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택시회사 간 친절 경쟁,가격 경쟁이 생겨날 것이고,비로소 사람들은 소비자로서 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공급자의 숫자만으로 경쟁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생각을 고쳐먹을 때가 됐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