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양반전'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양반은 여러모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사(士)라 하고,정치에 나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주림을 참고,돈을 만지지 말고,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화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마소를 꾸짖되 그 주인까지 욕하지 말고….' '1차 양반매매증서'의 내용을 듣던 부자가 "그런 것 말고 뭔가 이익이 되는 건 없느냐"고 묻자 관리는 2차 증서를 만들어 일러준다. '문과의 홍패(과거 합격증)는 백물이 구비돼 그야말로 돈자루다. …궁한 양반이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제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괄시하랴.' 양반이 돼 보려던 부자는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가버린다. 흔히 양반의 체면치레를 비웃은 것이라고 돼 있지만 들여다 보면 양반의 도리도 많다. 서양 귀족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책임의식)를 들먹일 것 없이 우리네 사대부들에게도 실천해야 할 법도가 있었던 것이다. 옛 사대부만 그러하랴.양반의 권리가 평민에겐 까다롭고 성가시기 짝이 없는 법도의 준수를 바탕으로 했듯 오늘날 사회 지도층이 누리는 지위와 대접 역시 일반인으로선 지키기 쉽지 않은 규범의 준수를 전제로 한다. 도리는 사라지고 치레만 남는다면,홍패를 돈자루나 세도의 상징으로만 여긴다면 누가 그들을 믿고 존경할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사회의 화두로 '팔영팔치'(八榮八恥)를 내놨다고 한다. 봉사,근면 성실,단결 협조,성실 신의,법과 규율 준수,인내와 분발은 영예로운 일,인민 위배,남에게 해를 끼치며 제 이익만 좇는 것,법과 규율 위배,교만 사치 방탕을 수치스러운 일로 꼽은 것이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사람 살이의 기본 도리를 새삼 들고 나온 걸 보면 중국사회의 혼란 역시 극심한 모양이다. 그래도 이 평범한 얘기들이 눈길을 확 끄는 건 우리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싶은데다 특히 '높으신' 분들이 가슴에 새겨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