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 세계를 자기 집 안마당처럼 훤히 꿰뚫어 보는 미국의 CIA 못지않은 정보망을 가진 것이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였다. 이 같은 방대한 해외시장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은 전후 수출로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일본을 벤치마킹 잘하는 우리도 1960년대에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를 만들어 명태,가발을 들고 우리기업과 함께 해외시장을 뛰게 만들어 겨우 오늘날의 먹고 살 만한 경제에까지 왔다. 그런데 때아닌 KOTRA 무용론이 고개를 들어 감사원으로부터 호된 감사를 받고 있다. 해외조직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진흥'이란 글자가 들어간 조직은 시대적 사명을 다했으니 구조조정대상이란 것이 높은 분(?)의 뜻이란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참여정부다운 발상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 고도성장시대에서 양극화 해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인지,아니면 이제 수출은 뒷전이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한국경제에서 수출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집요한 반기업적 정책으로 위축된 투자와 소비 속에서 그나마 이 정도의 성장이라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수출이다. 수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정부는 이를 다루는 조직에 좀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야 한다. 우선 KOTRA는 오영교 전임 사장이 있을 때 기획예산처가 주관하는 공기업 평가에서 선두를 달려 사장이 장관으로까지 발탁된 나름대로 칭찬 받던 조직이다. 지난 3년간 2만명 이상의 공무원을 늘린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날을 하필이면 무역과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에 들이대겠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정말로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면 대통령 주위에 포진한 국가균형발전위 같은 각종 위원회와 비대해진 정부부처 조직부터 손보아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물론 새로운 변화에 맞춰 KOTRA도 바뀌어야 한다. 그간 아시아로 오는 외국인투자의 대부분을 긁어모으던 거대한 블랙홀 중국으로의 투자가 요즘 멈칫하고 있다. 이는 투자유치 경쟁국인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미국 유럽 등에 흩어져 있는 무역관을 투자유치 거점으로 바꿔야 한다. 즉 해외조직을 '선진국무역관-투자유치,개도국무역관-중소기업 지원'으로 기능을 이원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개도국 무역관은 스스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가 버거운 중소기업에 공공재적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이 같은 해외조직의 강화는 새로운 충원 없이 내부개혁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중기청 지방조직과 중복되는 지방무역관은 이번 기회에 과감히 폐쇄하고 그 인력을 해외조직으로 돌려야 한다. 또한 오지의 해외무역관은 가능하면 현지어도 모르는 본사파견 직원보다도 비용이 3분의 1에 불과한 값싼 현지 채용인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10년을 근무해도 만년 일용잡급직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현지채용인에게도 정규직으로의 승진기회가 주어지도록 인사제도를 국제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KOTRA를 민간경제단체인 무역협회와 통합 운운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다만 그간 두 기관이 경쟁적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해 상당부분 기능이 중복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긴 하다. 우리 대통령이 세일즈 정상외교를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 대통령으로서 하나의 신흥시장이라도 더 개척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열사의 사막에서부터 검은 아프리카에까지 둥지를 틀고 말라리아 약을 먹으며 고군분투하는 해외무역관장들을 사명을 다한 구시대적 유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생각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