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가전에 이어 대표적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도 고(高)임금과 노사 문제,부지난 등을 피해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 나섰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 경제자유구역 내 70여만평에 2016년까지 7000여억원을 투자,대규모 조선소를 짓기로 했다고 27일 발표했다.


국내 조선업체 가운데 해외 조선소 건설 계획을 밝힌 것은 한진중공업이 처음이다.


한진중공업은 투자 금액 중 99.9%의 지분을 보유하고 나머지 소량의 지분에는 현지 관련 업체를 참여시킬 방침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음 달 현지 착공식을 갖고 우선 철구조물 공장을 지어 운영한 뒤 중·장기적으로는 연산 60만DWT(적재 중량t수) 규모의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길이 460m짜리 대형 도크를 건설해 2008년 첫 선박을 진수시키는 등 컨테이너선과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 VLCC(초대형 유조선)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진중공업은 도크도 짓기 전에 이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선주사인 CMA CGM사로부터 43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총 2억5000만달러에 수주,일감까지 확보했다.


조선소를 최종 완공하는 2016년께는 필리핀 현지에서 연간 1조2000억원대의 매출과 2200억원대의 영업 이익을 낼 계획이다.



◆해외 탈출의 신호탄?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조선소 건설이 조선업계의 '코리아 엑소더스'로 이어질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 진출은 조선소가 아닌 부품 생산용 블록공장 건설부터 시작됐다.


삼성중공업은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1997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 블록공장(20만평 규모)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연간 12만t의 블록을 생산하고 있으나 곧 20만t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2007년까지 1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30만평 규모의 블록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중·장기적으로 30만t의 블록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두 회사는 현지에 조선소를 건설하더라도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아 현재로선 블록 공장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 내 기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업체에 경영권을 주지 않겠다는 중국의 방침 때문이다.


따라서 대우와 삼성은 장기적으로 경영권만 확보되면 블록 공장을 조선소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한진중공업은 이런 점에서 필리핀을 선택,대우와 삼성보다 한 발 앞서 해외 조선소 건설에 나서게 됐다.


◆왜 나가는가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국내의 복합적 요인 때문이다.


고(高)임금 부담에다 인력 및 부지난,노사 문제 등이 갈수록 가중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탈출구로 해외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경우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을 선택했다.


국내에서는 갈수록 인건비가 높아져 차라리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블록을 생산해 들여오는 게 채산성이 맞는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중국산 블록을 국내로 들여오는 물류비를 감안하더라도 중국 현지 블록 공장을 두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노사 문제도 해외 탈출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사 노조들은 올해 산별노조 전환을 투쟁 이슈로 삼고 있는 데다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적극 들고 나올 태세여서 노조 문제가 없는 해외 조선소 건설이 갈수록 선호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선 도크를 증설할 부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한진중공업은 부산 영도조선소 등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조선소 부지가 연산 100만DWT 규모이지만 컨테이너선 LNG선 VLCC 등의 선박을 건조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