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진행되지는 않을 겁니다."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한국무역협회 총회에서 경선이 무산된 채 기립표결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새 회장에 선출되자 중소 무역업체 대표들은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방식으로 총회를 할 수 있느냐"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중소 무역업체들의 모임인 무역인포럼이 독자 후보를 내세워 사상 초유의 경선을 요구하기로 한 때문인지 총회장은 지난해의 2배인 1000여명의 참석자들로 회의 시작 전부터 가득 찼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던 총회는 회장단 대표가 "이희범 전 장관은 무역일선과 국제통상 일선에서 사상 최초로 무역 5000억달러를 달성한 주역이며 무역 1조달러 달성의 적임자"라며 추대 배경을 설명하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20여분간 이 전 장관 추대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잇따라 의사진행 발언을 쏟아내며 양측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A사 K대표는 "청와대가 산자부 장관 출신을 일방적으로 내려보낸 것은 무역인 모두의 자존심을 짓밟는 폭거"라면서 "청와대의 요구에 백기투항한 회장단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관료 출신 여부를 떠나 무역협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왔다는 C사 K대표는 "관료 출신이라고 해서 민간 출신보다 능력이 있는데도 회장에서 배제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우리 모두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감정을 죽이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의 공방이 이어지자 김재철 무협 회장은 "이희범씨 추대에 찬성하는 분들은 일어나 달라"며 기립표결을 시도했다. 절반에 못 미치는 참석자들이 일어났지만 김 회장은 "다수가 찬성했다"면서 의사봉을 두드리려 했다. 곳곳에서 "뭐하는 거야.과반수도 안 됐는데 왜 다수가 찬성했다는 것이냐"며 고성이 쏟아졌다. 이에 김 회장이 "추천할 다른 후보가 있느냐"고 물었고 무역인포럼측 관계자가 동미레포츠의 김연호 회장을 후보로 추천했다. 김 회장은 "재청할 분이 있느냐"고 물었고 발언권을 얻은 한 참석자는 뜻밖에도 이 전 장관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기립한 사람 수에 대해 서로 차이가 있는 것 같으니까 이번엔 이희범씨 추대에 반대하는 분들이 일어나 달라"고 했고 절반에 못 미치는 참석자가 일어나자 "세어 보지 않아도 되겠죠"라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곽재영 무역인포럼 대표는 재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재청을 하려고 했으나 김 회장이 발언권을 다른 사람에게 줬다"며 "운영위원회를 열어 법적인 대응을 포함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무역협회측은 "경선과 후보 추천에 대한 규정이 없어 재청 여부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무역인포럼측이 지지를 표명한 김연호 동미레포츠 회장은 경선이 무산되자 "연극과 같은 총회 진행에 기가 막힌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김 회장은 "경선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도 투표도 없이 결정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중소기업인들을 모아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