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정부와 시장 '無信不立' 되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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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
진나라에서 재상이 된 상앙(商 革央)의 머릿속은 부국강병의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격한 법적용과 질서의 확립이 그가 찾아낸 해답이다.
심지어 부자(父子)와 형제가 같은 방에 기거하지 못하게 하고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되었다.
제도시행 10년 만에 진나라는 막강한 군사력과 부를 쌓아 전국통일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규정을 지키지 못하고 처형된 시신으로 위수(渭水)는 항상 핏빛으로 물들었고 자신도 결국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다.
법과 제도는 공동체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은행창구에서 대기표를 뽑는 간단한 수고만 하면 내가 선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가슴 죌 필요 없이 편안히 잡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지키면 지킬수록 나도 편해지고 사회도 밝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조화시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제는 필요한 것이요,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내용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 않아야 한다.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지키기 어려운 규제를 도입하면 할수록 그 수요는 더욱 엄밀하게 충족되게 마련이다.
1980년대 초 과외금지조치가 특수계층의 고액과외를 불러왔고,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은 오히려 마피아들만 큰돈을 벌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오히려 지하경제를 부추기고,주민들의 수요가 무시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암시장이 성행하게 되는 것이다.
규제는 또한 점진적인 개선을 목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한다고 하지만 규제는 길게 보고 모든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욕은 자칫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규제의 목적이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다.
목적이 아무리 고상해도 지키기 어려운 규제는 많은 사람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들 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높은 수준의 규제는 필연적으로 준수율을 낮추게 되고 준수율이 낮으면 정부는 더 강력한 규제를 만드는 규제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말을 달리게 하는 데에 때로는 채찍보다 당근이 더 유용한 수단이 된다.
처벌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규제를 제정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다.
덩어리 규제는 그대로 있는데 잔가지 몇 개를 없앤다고 하여 불편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쪽 부서에서 규제를 없애는 그 시간에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목적으로 유사한 규제를 만들고 있다.
분명히 법령이 정비됐다는 발표를 들었는데 정작 더 중요한 후속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규제완화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시장 사이의 신뢰 회복이다.
서로 믿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도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개방화와 정보화 추세는 정부와 시장 사이의 신뢰형성만이 규제해소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복잡해지고 변화가 심한 현대 사회에서 정부가 모든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할 수는 없다.
정보화의 진행과 투명성 제고는 시장참여자들 스스로가 상황을 판단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규제에 따른 비용을 줄이고 경제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래서 공자도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無信不立)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