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고엽제 피해에 대해 고엽제 제조 회사들의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13부(최병덕 부장판사)는 26일 월남전 참전군인 1만7000여명이 미국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피고 회사들은 고엽제 피해가 입증된 참전 군인 6795명에게 최소 600만원에서 최대 46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간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겪고 있는 갖가지 질병과 고엽제의 인과관계를 법원이 인정한 적은 있었으나 그에 대해 고엽제 제조회사의 책임까지 물은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 같은 판결은 국제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결정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국 국립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임파선암 등 참전군인들의 질병과 고엽제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 공중 살포 도면에 의하면 한국군의 작전지역에도 고엽제가 살포되었으며 한국군이 현지에서 조달된 음식물을 통해 다이옥신에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고엽제를 제조,공급하였으므로 고엽제 후유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피고 회사들의 항변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따른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모씨 등 베트남전 참전 군인과 자녀 1만7000여명은 1999년 9월 피고 회사들이 생산한 고엽제 1600만갤런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청룡 맹호 백마부대의 작전 지역인 광나이 퀴뇬 등에 뿌려져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1심 재판부는 2002년 5월 "참전 군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질병이 고엽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손해배상 소멸시효인 10년이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