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채권에 관련된 이론을 보다 보면 영구채권(perpetual bond)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 채권은 말 그대로 채권의 발행자가 원금은 상환하지 않고 일정한 액수의 이자를 영구적으로 지급하는 채권이다. 물론 이는 실제적으로는 발행이 어려운 채권이다. 살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료라면 다르다. 받고 싶어서 안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채권의 적정가격은 얼마인가? 약간의 산술을 사용하면 그 답이 나온다. 이 채권의 적정가치는 지급하기로 약속된 액수를 이자율로 나누면 된다. 따라서 이자율을 연 5%(=0.05)로 보면 적정가치는 지급이자액수의 20배(=1/0.05)가 된다. 이제 이렇게 가정해보자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계층에 대해 연간 5조3720억원을 향후 계속해서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정부의 약속은 법이 존재하는 한 어길 수 없고 법은 상당기간 바뀔 가능성이 극히 낮다. 그렇다면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특정계층에 대해 영구채권을 발행해 지급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리고 현행 이자율을 5% 정도로 본다면 이 채권의 적정가치는 그 20배인 107조4400억원이 된다. 이 분석에 나오는 숫자들은 바로 2006년 162만가구에 적용될 국민기초생활보장예산에 등장하는 숫자들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계층에 대해 국가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으로서 과거의 생활보호제도를 대체하는 복지정책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후 같은 해 10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대상자에게 미달 금액 전부를 지원해 준다. 근로능력이 없는 빈곤층은 조건 없이 지원받고 근로능력자는 자활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는다. 이 제도에 의한 예산지출액수는 시행초기인 2001년에 3조1499억원으로 시작해 2004년 3조6192억원까지 안정세를 보이더니 2005년엔 4조6524억원으로 전년 대비 30%가량 대폭 올랐고 2006년엔 전년 대비 15% 증가한 5조3720억원의 예산이 잡혀있다.이는 매우 필요하고 의미있는 예산지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예산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고 참여정부에 와선 증가속도마저 빨라졌다. 그리고 이 예산은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것이다.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최저생계비 기준도 계속 올라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복지예산이 그렇듯,늘면 늘었지 줄이기는 거의 불가능한 예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산은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영구채권에 대한 이자의 성격을 지닌다. 지급액수가 2006년 수준으로 동결된다고 가정한다 해도 해당 예산 하나만으로 추산된 영구채 발행잔액은 107조원이나 된다. 정부는 해당 항목의 2006년 예산을 7000억원 정도 늘린 것에 불과하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갚아야 할 영구채권 잔액이 14조원 늘어난 셈이다. 경직적 예산의 증액에는 이처럼 심각한 문제가 내재돼 있다. 영구채권 발행을 늘린 현 정부야 생색을 낼 수 있겠지만 전 정권이 발행한 채권 이자를 갚느라고 허덕일 다음 정부는 무언가? "멀리 내다보고 할 일은 뚜벅뚜벅 해나가도록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생각한다면 줄이기 힘든 예산을 한꺼번에 늘리는 식의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게다가 상황이 이렇다면 세금을 전반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동감하기 힘들다. 왜 이 정권만 유독 이처럼 영구채권 발행을 자꾸 늘려가는가? 혹시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건 이자를 갚아야 할 납세자들,그리고 미래에 세금을 낼 후세대를 생각한다면 영구채권의 추가발행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미래 세대와 다음 정부도 해야할 일이 있고 세원이 필요하다. 추가세원이 필요하다면 예산을 늘리기 보다는 있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때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