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좀 독특한 '취미'가 있다.


휴일에 집 주위의 한적한 카페를 찾는 것.직원들과 이메일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내용은 매우 진솔하다.


사장은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것은 물론 평소 직원들에게 고마운 점과 섭섭했던 점까지 쓴다.


직원들도 사장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는다.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런 솔직함은 경영의 투명성으로 이어진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있는 현대카드 본사의 임원실은 통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 보인다.


임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회사를 이끌어 가는 임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직원들도 투명하고 정확히 알아야 한다"(정 사장)는 뜻에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이 정 사장의 '튀는 감각'.남자 모델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화제가 된 미니M,'아버지는 말하셨지,인생을 즐겨라∼'라는 CM송으로 유명한 현대카드W….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튀는' 스타일의 광고가 그의 참여 속에 만들어졌다.


'카드 마케팅의 이단아'란 별명이 나온 이유다.


사실 '튀는 광고'가 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정 사장이 최고경영자(CEO)가 된 2003년은 카드업계의 혹한기였다.


당시 현대카드는 6270억원의 적자를 냈다.


LG 삼성 등 메이저 카드사와 달리 회원 수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후발 주자로서는 생존 자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유동성 위기에 휩싸인 카드업계는 앞다퉈 구조조정을 선언하고 마케팅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정 사장은 2004년 한 해 동안 수백억원대 자금을 마케팅 비용으로 썼다.


역발상 전략이다.


의미 있는 수익을 올리는 것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서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의 동물적인 승부사적 감각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결국 역발상 전략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2003년 5월 첫 선을 보인 주력 상품 현대카드M은 단일카드로는 최다인 350만명의 회원을 만들어 냈다.


이른바 메가 히트 상품이다.


현대카드M의 성공은 회사의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적자 회사가 2년 만에 400억∼500억원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정 사장이 취임할 당시 2% 선이던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말 10%대로 올라섰다.


10% 돌파는 메이저 카드사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란 의미다.


하지만 올해 환경은 녹록지 않다.


당장 1·4분기 중 LG카드 매각이 예정돼 있다.


LG카드를 누가 가져 가느냐에 따라 업계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그뿐 아니다.


시중은행들도 카드업을 주요 수익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까지 적극적인 영업에 가세하면 카드업계는 또다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


현대카드도 현대카드M을 제외한 현대카드W 등 다른 브랜드들의 파워가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약점도 있다.


정 사장은 이를 '기회이자 도전'으로 생각한다.


"과거와 다른 사업 모델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와 브랜드 차별화가 필요한 시점"이란 판단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다.


"10%대를 넘어선 점유율을 올 한 해 동안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한다.


로열티 높은 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더욱 강화해 메이저 카드회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연봉 1억원 이상의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부장급 이상을 타깃으로 한 '더 퍼플(the Purple)' 카드를 새로 내놓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위기의 현대카드를 살려낸 정 사장.그의 '튀는 광고' 마케팅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언제쯤 현대카드를 메이저 카드사의 반열에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