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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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원작 김태웅,감독 이준익)가 장안의 화제다.
심상치 않은 제목 덕일까.
'태풍''킹콩' 등 블록버스터들 틈바구니에서 개봉된 지 한 주 만에 115만명을 동원,상영관을 늘리더니 순식간에 300만명을 모았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멀지않아 500만명이 넘어갈 가능성도 높다는 마당이다.
3배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태풍'이 엄청난 마케팅과 상영관 공세에도 불구하고 400만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비하면 놀라운 성과인 셈이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왕의 남자'라는 웃지 못할 유행어도 생겨났다.
뭔가.
어떤 요소가 현대극도 아닌 사극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는 것인가.
줄거리는 간단하다.
조선조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장생과 공길이라는 광대가 궁중에 들어가 왕을 웃기고,중신들을 놀리지만 결국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다시 자유로운 광대를 갈구한다는 얘기다.
여자보다 더 고운 남자,중성적 매력의 남자가 왕의 사랑을 얻음으로써 주위의 질투심을 유발한다는 것은 곁가지일 뿐.
대형스타가 등장하지도 않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도 없다.
그래도 관객들은 울고 웃는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장면을 보며 몸을 움츠리고,외설스런 대목에서 깔깔대고,탐관오리의 비리를 꼬집는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광기 가득하지만 "생이 이리 아프다.
내 생애가 이리 섧고 서러웠다"는 연산의 대사에서 문득 함께 서럽다.
그런 연산에게 연민을 보내는 공길의 눈길은 안타깝고,공길의 마음이 왕에게 향하는 걸 보는 장생의 슬픔은 가슴을 저민다.
목숨을 건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은 삶에 대한 욕망이 만드는 힘을 느끼게 한다.
결국 '왕의 남자'의 성공은 관객을 사로잡는 건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볼거리보다 희곡(爾)에서 가져온 탄탄한 줄거리와 치밀한 구성,적확한 심리 묘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콘텐츠산업에서 승부하려면 돈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입증했다고나 할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