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를 통해 등단한 중견시인 이승철씨(48)가 세 번째 신작시집 '당산철교 위에서'(솔)를 펴냈다. '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을 펴낸 후 5년 만에 나온 시집이다.


'58년 개띠'로 어느덧 40대 후반으로 접어든 시인의 글 속에는 팍팍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이 땅 동년배 남성들의 자화상이 잘 녹아 있다.


'나이 마흔 넘어 세상을 산다는 건/ 석양빛 붉은 울음을 제 뼛속마다 고이/ 개켜 넣는 거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악머구리 끓듯 소란스럽지 않게/ 저만큼 서로 한 뼘씩 거리를 둔 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상처의 불꽃들/ 밤새 안녕하였다는 눈인사를/ 저 스스로에게 묵묵히 건네며/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미스터 L의 회상' 중)


세속적 현실과 '푸른' 기억 사이의 대조 속에서 현재를 응시하고 반성하는 내용의 시도 눈에 띈다.


'2만5천 볼트의 전류를 기운차게 뿜어내며/ 2호선 전동차가 바람을 헤치며 돌진한다/ 당산철교 밑으로 푸르딩딩한 강물이 떠가고/ 당인리 발전소 저켠 치솟는 굴뚝 연기들이/ 사쿠라꽃처럼 화들짝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일순,덜컹이다가 쓰라린 공복을 어루만졌다/ 나는 지금 한 마리 낙타로/ 인생이라는 신기루를/ 무사히,잘,건너가고,있는가?/ 옛사랑이 다만 흐릿하게라도 남아 있는 한/ 세상을 사는 존재의 형식을 되묻지 말아야 한다.' ('당산철교 위에서' 중)


시집에서는 김남주 채광석 고정희 기형도 김소진 윤중호 등 요절한 문인들에 대한 진혼가도 함께 담고 있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욕망과 해탈의 이중주 속에서 오늘도 난 살아가고 있다. 허허로운 삶의 한 자락 끝을 붙잡고 서 있는 사람들. 정녕 난 가당찮은 저 시간들 속에서 무엇을 갈망하였나. 자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는 것,그럼으로써 자기 영혼에 메스를 가한다는 것,그리하여 미욱한 이 세상을 향해 일갈하고 싶다는 것. 이것이 최근 나의 시작 태도다"라고 썼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