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지난해 12월 중순.SK㈜ 미국 휴스턴 지사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스 탐사를 위해 루이지애나주 북이베리아에 꽂은 시추기가 땅속 4km 지점에서 진흙에 걸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진흙이 많은 이 곳 지질의 특성상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해가 바뀌기 전에 서울에 '승전보'를 알릴 수 없게 됐다는 초조함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휴스턴을 출발,자동차로 5시간을 내리 달려 탐사현장이 위치한 북이베리아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이곳을 강타한 허리케인의 흔적은 간 데 없고 사람키만큼 자란 사탕수수만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 때쯤 멀리 익숙한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두글자 'SK'가 선명히 인쇄돼 있었다. 'Grey Wolf 507.' SK가 지난해 10월 가스전 탐사를 위해 이 곳 미국땅에 처음으로 꽂은 시추기의 이름이다. 10층 건물 정도 크기의 이 흉물스러운 기계가 SK에 '대박'을 안겨다 줄 수도,실패의 쓴 맛을 보여줄 수도 있는 주인공이다. "이틀 정도 작업이 지연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가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1차 타깃(목표지점)'까지 1km 정도 남았습니다." 현지 시추 전문회사인 할리버튼의 엔지니어 제프 로즈가 말했다. 이 곳에 가스가 존재할 확률은 약 20%. 총 투자금액 1000만달러를 고스란히 날릴 확률이 80%나 된다는 얘기다. 물론 성공만 하면 투자비의 수십배가 넘는 돈을 앉은 자리에서 벌 수 있다. "미국에서의 자원탐사는 그래도 성공확률이 높은 편이에요. 대신 매장량이 적죠. 국제적인 입찰이 붙는 광구의 경우 성공확률은 평균 5%에 불과하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돈방석에 앉게 되는 겁니다." 걱정에 잠겨 있던 김한선 SK㈜ 휴스턴지사 부장이 이제서야 안심이 된 듯 입을 열었다. 탐사 프로젝트의 재무책임자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는 SK가 세계 메이저들의 자원탐사전(戰)에 정식으로 '데뷔'한다는 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미얀마 프로젝트 실패 후 처음으로 SK가 직접 운영을 맡은 탐사광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는 세계적인 에너지 메이저들의 '고향'입니다. 이 곳에서 가스전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로 SK의 이름을 메이저 무대에 알리게 되는 셈이죠. 업체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이 사업의 특성상 잘만하면 앞으로 사업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고요." SK가 석유탐사의 본고장 루이지애나에 시추기를 세우기로 결정한 건 지난해 3월. 김 부장이 한 달 앞서 열린 북미 자원개발 프로젝트 견본시장 'NAPE'에서 눈여겨 본 프로젝트였다. 최동수 SK 휴스턴 지사장(지질학자)과 서울 본사 소속 지구물리학자 이명환 부장,미국 현지 엔지니어인 테드 오트리가 팀에 합세했다. 1억년 전 미시시피강 주변의 땅 속 움직임과 탄성파를 이용한 현재의 지질분석을 통해 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20% 정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음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돈을 날릴 확률이 80%나 되는 결정이죠. 이 사업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해야 되는 이유보다 많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돈은 절대 벌 수 없죠." (최 지사장) 본사의 승인 후에도 '산 넘어 산'이었다. 유가가 뛰자 시추기값도 덩달아 뛰었고 그나마 빌릴 기계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허리케인이 불어닥치기 직전에서야 겨우 빌릴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10월에야 SK의 이름을 새긴 시추기가 이 곳 미국 땅에 세워졌다. 시추선 위에는 SK 깃발이 성조기와 함께 꽂혔다. 최 지사장은 "미국인의 정서 때문에 태극기를 꽂을 순 없지만 SK의 파이프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있는 한 이 곳은 한국의 경제영토가 아니냐"며 웃어보였다. 루이지애나=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