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 지원 확대만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최근 들어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설비 투자 회복의 전제 조건으로 중소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중소기업 관련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성장 잠재력 추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체 고용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고용과 체감경기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선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곳에 선별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갈수록 뒤처지는 중소기업 중소기업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지표들은 암울하다. 정보통신(IT)과 조선 등의 업종에서 대기업들이 전례없는 성장세를 구가하는 동안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중소기업(종업원 300명 미만)의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감소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이후 7년 만에 처음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은 9.4%의 고성장을 했다. 2002년 2.0%포인트에 불과했던 대·중소기업 간 생산증가율 격차는 △2003년 3.8%포인트 △2004년 9.5%포인트 △2005년 1∼10월 11.0%포인트 등으로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2003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종업원 수가 전체 종업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0%로 일본(72.7%) 미국(41.6%) 영국(53.2%) 폴란드(62.0%)에 비해 높다. ◆설비투자 회복 중소기업에 달렸다 국내 경제의 핵심문제인 '설비투자 부진'도 중소기업의 벽에 부딪쳐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대기업은 2003년 이후 꾸준히 두 자릿수 설비투자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올해(-2.3%)에 이어 내년(-16.7%)에도 투자 부진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됐다. 현정택 KDI 원장은 "최근 2년간 대기업 부문의 설비투자는 상대적으로 활발했다"며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 부문의 투자가 부진한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기술있는 기업에 집중 지원해야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에 기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한계 중소기업들을 과감히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강동수 KDI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M&A를 통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며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승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외환위기 이후 우리경제는 급속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며 "대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게 '제1의 구조조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전체 경제에서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 자영업 등을 대상으로 한 '제2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