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개관 44일만에 100만 인파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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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문화계의 최대 사건은 서울 용산에 건립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세워진 중앙박물관의 경우 지난 10월28일 문을 열자마자 전국의 인파가 몰려 개관 44일 만에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전시실 외에 도서관과 극장 '용',어린이박물관 등을 열어 한국 문화의 새로운 메카 겸 온 국민의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중앙박물관의 건립 및 운영 총책인 이건무 관장(李健茂·58)을 만나봤다.
-광복 60주년인 올해 새 건물을 완공,개관한 것만도 큰 일인데 관객의 성원 또한 엄청나니 소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실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된 건물이 없어 10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외국 박물관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온 경향이 있었죠.이제 9만여평 부지에 4100억원 이상을 들여 지은 세계 6대 규모의 건물이 있으니 박물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도 이제 이만한 박물관을 가질 때가 됐고요.
국민들도 그런 자부심 때문에 찾아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물 신축과 이전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많았을 텐데요.
건립기간 내내 사표를 품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무사히 해낼 수 있었던 숨은 힘이 있었다면.
"제대로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각오로 일했죠.가장 큰 걸림돌은 미군 헬기 착륙장 이전 문제였고요.
개관 날짜는 2005년 10월로 약속된 상태인데 헬기장을 옮기지 못하면 정문을 낼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다행히 5월1일 부지를 인수해 예정대로 개관했습니다.
수장고 처리와 유물 이전도 큰 일이었습니다.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직원들의 노력과 국민의 성원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도 좋았고요.
태풍이 두어 번만 불었다면 개관을 연기해야 했을지 모릅니다.
숨은 힘이랄 건 없고 아내가 독실한 불교신자입니다.
저 역시 집에 불당을 만들어 출근 전 기도하고요."
-전엔 수장고가 지하에 있었는데 지상으로 올라왔는지요.
소장품과 전시품은 어느 정도인가요.
"앞에서 보면 지하 1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지상 1층이에요.
수장고가 지하에 있으면 결로 현상이 문제지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도 이중으로 하고 공조시설과 조습 패널을 붙였어요.
누가 봐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장품은 15만점가량이고 그 가운데 1만1000여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품을 전보다 두 배로 늘렸어요."
-개관 후 아쉬운 점이나 보완해야 할 점도 눈에 띄었을 텐데요.
"관람객이 예상보다 많아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단체 관람객이 식사할 곳도 부족하고 주차장도 모자라고요.
급한 대로 간이식당을 만들었어요.
주차 규모는 버스를 포함,800대가량 되는데 부족합니다.
가능한 한 지하철을 이용하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쓰레기 문제 등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거나 음료수병을 들고 들어오는 것 등은 삼갔으면 합니다.
중요한 회화나 직물류 유물은 빛에 약합니다."
-관람객이 하루 4만명 이상인 적도 있었다는데요.
관람객이 그렇게 많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시 체재 적정인원을 3000명 정도로 산정했습니다.
하루 적정인원을 1만명 정도로 본 거지요.
그러나 개관 초 평일 1만6000명,주말 3만명 정도가 됐습니다.
하는 수 없이 무료지만 관람 편의를 위해 티켓을 제한해 발부한 뒤 혼잡도를 체크해 일부가 빠져나가면 다시 들여보내는 방식을 썼습니다.
관람객이 많은 건 무료인 까닭도 있겠지만 주 5일제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큰 돈 안 들이면서 볼 만한 곳을 구하다 보니 박물관을 찾게 되는 거겠지요."
-개관 직후 고고사관 연표에 고조선이 누락됐다는 등 일부 안내문에 대한 오류 지적이 있었는데요.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물관의 성격이 소장품에 의해 정해진다고 볼 때 중앙박물관은 역사박물관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내용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지요.
일부 의견을 수용해 연대 표기를 수정했습니다.
우리 박물관의 경우 길게는 역사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어 역사부를 설치하고 역사관을 꾸몄죠.때가 되면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할 수 있겠지요.
얼마가 걸릴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운영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텐데요.
"소장품은 외국 유명 박물관보다 다소 적지만 운영 면에선 세계적인 박물관 못지 않다고 봅니다.
MP3 플레이어와 PDA시스템 등 '모바일 전시안내시스템' 등도 도입했어요.
프로그램을 자주 새롭게 하고 다양한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규모가 방대한데 좋은 관람법이 있다면.
"관람 편의를 위해 꼭 봐야 할 '50선' '100선' 등의 표시를 해놓았지만 그보다는 자주 와서 천천히 보셨으면 합니다.
'본 만큼 더 보인다'고 하잖아요.
전시실이 역사관 아시아관 미술1관 2관 기증관 등 6개관으로 있으니 오실 때마다 하나씩 골라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꾸 보다 보면 아이디어와 영감도 생길 거예요."
-내년부터는 유료로 바뀌지요.
"그렇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중고생 1000원,어린이는 500원입니다.
전에는 청소년은 무료,어른은 700원이었지만 10여년 동안 인상되지 않은 걸 감안하면 크게 오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수렴 결과는 3000원을 받자는 쪽이 많았지만 4인 가족 기준으로 교통비 입장료 식음료 비용을 합쳐 2만원을 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2000원으로 정했습니다.
어린이는 무료로 할까 하다 유물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요금을 받기로 했고요."
-중앙박물관의 중장기 계획은.
"중장기 계획안은 이미 만들어져 확정단계에 와 있습니다.
문화재의 보전과 관리 등 기본적인 박물관 업무에도 힘쓰겠지만 앞으로는 연구 활성화와 교육프로그램 강화에 좀더 신경을 쓸 작정입니다.
국제교류의 활성화 방안도 짜놨지요.
경영 면에서도 한층 도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많은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시설관리법도 모색해야지요.
국가 예산을 덜 쓰면서 운영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하고요."
-연구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은퇴 뒤의 계획은?
"모두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발굴 운도 좋았고요.
선사시대 목관을 비롯해 붓과 칠기 등 최초라고 수식 붙은 발굴을 많이 했죠.창원 다오리 유적과 서울 암사동 유적 발굴도 기억에 남아요.
은퇴하면 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아직 나이도 많지 않고 그동안의 공부가 흡족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기회가 닿는 대로 공부를 좀더 했으면 합니다."
글=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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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47년 서울 생
△1969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2002년 고려대 대학원 박사학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1984∼86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1989∼93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
△1993∼98년 국립광주박물관장
△1994∼95년 호남고고학회장
△1998∼200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2003년∼현재 국립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