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폭음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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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지방의 어느 보건소 앞에 내걸렸던 현수막이 생각난다.
"술에 장사 없고 술꾼에게 제 명 없다"는 것이었다.
다소 섬뜩하지만 술의 폐해가 이 한 문장에 적확히 담긴 것 같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술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과음할 때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져 적당히 마시면 양약이 되지만,과음하면 독약으로 돌변한다.
특히 술이 간보다 뇌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폭음을 계속하면 치매환자처럼 뇌가 쪼그라들며 복원되는데는 최소한 한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기억력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도 원활히 작용하지 못해 심하면 뇌신경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과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영국에서는 최근 니키 테일러라는 40세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음실험'이 화제가 되고 있다.
"폭주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는데,관계자들까지도 의외의 수치에 놀라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은 매주 5일 동안 밤마다 칵테일 포도주 맥주 등을 평균 28잔씩 마신 결과,한달 새 체중이 3.6㎏이나 늘어 허리는 타이어를 두른 것 처럼 됐고,피부는 10년 이상 늙어버렸다는 것이다.
니키의 폭주실험은 오는 1월 BBC방송이 다큐멘터리로 방송할 예정이다.
한 달 동안 햄버거만 먹어 11㎏이나 체중이 불어난 체험영화 '슈퍼사이즈 미'를 연상시킨다.
당국은 이 방송이 알코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벌써부터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술집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술을 싸게 파는 '해피 아워'를 금하고,음주관련 범죄로 세 번 이상 적발된 사람의 술집출입을 금지하는 '3진 아웃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도 음주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터여서,애써 낙관적으로 보려는 것 같다.
온갖 이름의 폭탄주가 성행하고,독주소비량이 세계 정상을 달리고,음주로 인한 간암 사망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우리 현실에서 폭주실험의 교훈을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