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아이템 시장이 '마약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온라인게임 서비스 약관에는 아이템 현금거래가 금지되어 있으나 불법 거래가 급팽창하면서 아이템을 탈취하기 위한 해킹 사기 폭력 등이 판치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 게임 아이템 '사냥'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올해 아이템 거래 시장은 1조원.8000억원 선인 빙과시장보다 더 크다.
하지만 아이템 시장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법제는 전무하다.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세금도 통제도 없는 블랙 마켓
아이템은 게임 속에서 괴물을 죽이거나 일정 레벨을 달성해야만 얻을 수 있는 칼 창 방패 등을 말한다.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부지런히 캐릭터의 힘을 길러 아이템을 얻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조급한 게이머들은 남의 아이템을 사서 힘을 키우기도 한다.
이런 아이템 중에는 수백만원짜리도 부지기수고 귀한 것은 1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게임 아이템 시장은 세금도,통제도 없는 거대한 '블랙 마켓'이다.
문화관광부와 한국게임산업협회에 따르면 게임 아이템 시장은 2003년부터 급팽창했다.
2002년까지는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3년 4500억원,2004년 7000억원으로 커졌다.
내년에는 1조5000억원으로 온라인게임 전체 시장(1조6000억원)과 비슷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임 아이템 거래에 대해서는 법제에 의한 규제가 거의 없다.
게임 서비스 약관에 아이템 거래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넣게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수십개의 사이트가 성업 중이고 게이머끼리 은밀하게 거래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물론 아이템 거래에 대해 세금이 부과되는 것도 아니다.
◆게임업계의 이중적 태도
유독 한국에서 아이템 거래가 활발한 것은 게임 업체가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게임 업체가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약관에 거래 금지 조항을 명시해놓고 거래를 반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사 게임을 뜨게 하려면 아이템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써니YNK의 윤영석 사장의 경우 전에는 "아이템 거래 때문에 한국 게임산업이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자사 게임 '로한'이 아이템 거래로 뜨자 이젠 아이템 거래 양성화 전도사로 변했다. 써니YNK는 최근 거래 중개업체인 아이템베이와 제휴,아이템 해킹과 사기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안전한 장치를 마련할 테니 안심하고 거래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고도 인기를 얻는 게임이 적지 않다. 미국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에서는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획득한 후엔 팔거나 양도할 수 없게 돼 있다.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이템 현금거래의 덫
게이머들이 아이템에 집착하는 것은 아이템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어떻게든 강한 아이템을 구하려고 하는데 강한 아이템일수록 비싸다.
경제력이 없는 일부 젊은이들이 갈취나 절도의 방법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템이 비싸다 보니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전문 거래단까지 생겨났다.
지난해에는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3'를 해킹해 불법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팔아 1억5000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건도 발생했다.
이 해커는 아이템을 복사해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1400여 차례에 걸쳐 판매했다.
아이템 거래는 게임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아이템 거래가 흥행을 좌우하다 보니 게임 개발 업체든 서비스 업체든 아이템 거래를 조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더구나 올해 야심적으로 내놓은 대작 게임 중 아이템 거래를 적극 장려하는 써니YNK의 '로한'을 제외하곤 대부분 참패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전에 아이템 거래를 극구 반대했던 게임업체 사장 중에서도 찬성쪽으로 돌아선 사람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아이템 중개 사이트인 아이템베이 회원은 300만명이나 된다.
다른 중개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직접 거래하는 게이머를 포함하면 아이템 거래자는 500만명에 달한다고 게임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젠 아이템 거래를 무시하곤 게임 사업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 게임산업이 아이템 거래의 '덫'에 걸린 셈이 됐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