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느티나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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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골 마을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는 대부분이 느티나무였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은 한여름철 휴식처로 그만이었고,마을의 모든 대소사를 논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무에 얽힌 전설도 많다.
나뭇잎의 싹이 트는 모습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든지,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병마와 액운을 물리친다는 것 등이다.
잎이나 나뭇가지를 꺾기만 해도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사 재앙을 입는다 해서 함부로 접근하는 것조차 꺼릴 정도였다.
서양에서 월계수를 신성시하듯,우리가 신령한 나무로 받든 느티나무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게 '느티나무 카페'다.
1998년 서울 안국동에서 문을 연 이 카페는 겉보기에는 일반 음식점과 별반 다를 게 없으나 그 속내는 확연히 다르다.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카페를 차렸다는 사실 자체가 화젯거리였을 뿐더러 대체 얼마의 수익금을 올려 단체의 활동비로 충당할 것인가도 관심이었다.
무엇보다도 느티나무 카페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시민단체들의 모임과 기자회견장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다.
대통령 탄핵소추나 이라크 파병,국회의원 낙천.낙선 운동 등 쟁점이 뜨거울 때는 75평 규모의 이 카페도 용광로처럼 훨훨 타오르곤 했다.
과거 민주화 시절부터 각광을 받아온 '세실레스토랑'과 더불어 전용 기자회견 명소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시민활동의 요람격이면서 철학 카페로도 불리는 느티나무 카페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건물주가 오는 2월께 증축을 하겠다는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운영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터여서 관계자들은 몹시 당황스러워 하는 모양이다.
느티나무 카페는 "논쟁이 사라진 시대,논쟁의 공간을 마련하자"는 설립취지를 충분히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카페가 필요없을 때 진정으로 좋은 나라가 된다"는 역설적인 얘기도 있지만,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이 단절없이 마련되면서 느티나무의 정신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