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 경기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방의 경제는 중앙집권 시절에 비해 더 나아진 것 같지 않고,지방의 독자적인 색깔과 개성 역시 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비대해진 수도권'이 이러한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지만,실상 그에 대한 단죄만으로 지방이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문제의 핵심은 세계화와 지식경제화,탈근대적 문화 경향 속에서 지방이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서,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여러 지역과 경쟁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이 시기에 지방의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지역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물론 지역에서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소위 장기종합발전계획과 같은 방식으로 전문가 그룹에 미래를 그려보는 작업을 맡기기도 했고,관광객 유치를 위해 축제도 하고 상징물(CI·City Identity)도 만들어 이미지 통합작업에 활용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많은 경우 장기발전계획은 백화점식 상품진열로 초점을 잡기가 어려우며,축제는 '소문난 동네잔치'가 되기 십상이다. 애써 만든 CI는 나부끼는 깃발과 휘장에서 화석화되고 만다. 필자는 그 이유의 상당부분을 '모든 작업에서 초지일관 그 지역만의 색깔과 혼을 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역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아,모든 주체와 실천들이 뚜렷한 목표와 전략아래 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근 궤적은 똑같은 선수가 '전략과 통합적 리더십'의 유무 여부에 따라서는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역 브랜드야말로 현재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전략의 키워드다. 1980~90년대에 외국의 여러 도시가 장소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을 통해 지역경제를 살려냈다. 뉴욕 글래스고 홍콩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이러한 믿음에는그 브랜드가 '올바른 과정과 고민을 거쳐서 지역의 색깔과 혼을 담은 창의적인 것'이어야 하며,'개발 이후에도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담겨 있다. 지난 10여년간 지자체마다 CI를 개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그야말로 '상징물을 하나 디자인해내는 작업'에 머물러서,'발전의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새천년 시작과 함께 과거의 CI와는 개념적으로 다른 브랜드 전략을 추진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지역브랜드 실천은 초기단계로,체계적 전략구상 속에서 개발과 실천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것은 지자체의 지역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며,대부분의 브랜드에 관련된 이론이 '상품'이나 '기업'브랜드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전문가들이 '지역'의 속성에 맞는 이론과 실천 방법론을 확립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에서 '브랜드 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개발과 마케팅,지역발전 정책에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역은 이제 백화점이 아닌 명품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화와 지식정보 사회는 문화와 이미지,취향이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지역은 그 자체가 명품이 돼야 세계에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 실체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개성 있는 강력한 이미지를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지방은 자신의 색깔과 혼이 담겨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며,지역이 그 색으로 통합되고 미래를 향해 움직일 때 우리 축구대표팀 같은 힘을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