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해법도 리더십에서 나온다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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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에서 문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국으로 몇 십년 동안 이례적인 성장을 누려온 나라였다.(…)그런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이 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이 나 있다는 사실이었다.(…)은행들이 부도 직전의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우리의 우려는 추수감사절 전날 절정에 이르렀다.'
1997년 세계 금융위기의 해결사역을 맡았던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이 신간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신영섭·김선구 옮김,지식의날개)에서 밝힌 당시 상황이다.
그는 제이콥 와이스버그와 공동집필한 이 책에서 그해 11월21일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순간,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의 숨가쁜 협상과정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관치금융 등 경제시스템에 대한 개혁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과정,'끌어들이기(bail-in) 전략'으로 민간부문의 자금을 동원해 구제금융을 충당한 얘기도 흥미롭다.
그는 특히 재무부 사람들과 행정부의 외교정책 담당자들 간에는 문제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었다면서 '그것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지정학적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속한 융자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 그러나 그는 '경제적 안정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정학적 목표도 성취되지 않으리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충분한 시스템 개혁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IMF와 미국이 금융지원 의지를 공약한다면 한국이 본궤도를 되찾아갈 확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개혁에 대한 김 대통령의 공약과 국제사회의 금융지원이 조화를 이룬 덕분에 한국경제가 호전됐다'며 '김 대통령과 그의 동료들은 경제적 애로를 벗어나는 데 건전하고 용기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책에는 이 같은 내용 뿐만 아니라 '루비노믹스'로 미국 경제의 최대 활황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노하우와 루빈의 리더십 철학도 들어있다. 골드만삭스에서 26년간 근무하며 공동회장까지 지내고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의장과 재무부 장관을 거쳐 씨티그룹 공동의장에 이르는 그의 활약상 또한 드라마틱하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이다''시장이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의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등 '루빈의 국제금융 독트린'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를 통해 루빈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는 통찰력과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재직 시절 대통령에게 추천해 화제를 모았다. 번역을 맡은 신영섭 고려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김선구 신한은행 여신감리부장은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 심사역과 캐나다로얄은행 한국총괄 부대표 등을 지낸 금융전문가다.
602쪽,2만4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