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좋은 전통 하나는 회장이 모든 신입사원 면접을 직접 본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고졸 여사원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계열사가 많아져 대졸 신입사원만 본다고 한다. 회장 면접은 간단했다. 최종 면접에서 회장이 맘에 들면 입사지원서에 사인을 한다. 그러면 합격이다. 사인이 없으면? 당연히 불합격이다. 두산 식구들은 회장이 직접 골랐다. 지난 91년. 그때도 두산에 비상경영위원회가 있었다. 낙동강에 흘러들어간 페놀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당시 박용곤 회장은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수창 회장이 대신 총수를 맡았다. 말그대로 전문경영인 회장이었다. 그해 입사한 한 두산그룹 직원은 몇 년뒤 우연히 자신의 입사지원서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정수창 회장의 사인이 없었다. 대신 면접장 한켠에서 물끄러미 자신을 지켜봤던 박용성 당시 OB맥주 부회장의 사인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전문경영인은 허울이었다. 결국 허울좋은 정수창 회장은 페놀 사태가 잠잠해진 93년에 물러났다. 다시 박용곤 회장이 회장이 됐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경제쪽만 7년째 출입하고 있지만 솔직히 전문경영인 체제가 나은지 오너 체제가 나은 지는 자신이 없다. 가끔 기사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점도 있다. 둘 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두산의 오너일가가 비자금을 차라리 두산중공업 인수 로비 자금으로 썼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로비자금은 나쁘지만 회사를 위해서였다면 그래도 조금은 동정해주는게 솔직히 아직까지 우리네 맘이다. 그런데 비자금이 백억원대 생활비라면 얘기가 다르다. 생활비를 백억원씩 써대는 오너라면 도무지 마뜩지 않다. 두산의 비상경영위원회가 출범했다. 대단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포부다. 사장급으로 TFT 팀장도 임명했다. 거창하다. 이사회 강화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SK를 뛰어넘겠다고 한다. 사실 SK야 이사회만 강화됐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총수체제는 그대로다. 그나마 이사회 강화로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비상경영위원회가 국내외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데 어떤 해법이 나올지 사뭇 궁금하다. 문제는 오너 일가가 5%도 안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제것인 양 할 수 있는 순환출자구조다. 비상경영위에서 해소하겠다는데 제대로 된 혁신이 나올지, 이리저리 잘 피해간 편법이 나올지 모르겠다. 109년 가족경영 전통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페놀사태 때의 재연일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박형원 두산 차장, 박인원 두산 과장… 그리고 최근 연강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박용현 전 서울대 교수. 두산에는 아직도 박 씨 오너가 많다. 그 속에서 거창하게 출범한 비상경영위원회에 정말 기대를 걸어본다. 방규식기자 ksb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