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시인이며 역사가였던 그룬트비그는 농업에서 곧잘 인용되는 사람이다. 19세기 후반 덴마크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와의 싸움에서 패해 남부의 국토를 잃고 왜소한 국가로 전락하자,그룬트비그는 "검으로 잃은 토지를 괭이로 파헤쳐라"는 구호 아래 애국운동을 전개해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일깨웠다. 전국 곳곳에 대학교를 세워 유능한 농업청년들을 사회에 배출하기도 했다. 덴마크 농업이 아직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룬트비그의 정신을 받든 농부들이 긍지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게다. 사실 우리도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해서 농부를 으뜸으로 쳤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힘든 일이나 하는 농사꾼에 불과했다. 이제는 농지가 정리되고 기계화가 됐지만,농촌에는 노인들만이 남겨져 폐가만 늘어날 뿐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동네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됐다. 통계를 보면 실감난다. 30세 미만의 농가는 전체 농가의 0.5%도 되지 않고 농업인구는 30년 전 1300만명이었으나 지금은 350만명에 불과하다. GDP에서 차지하는 농업비중 역시 갈수록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쌀 관세화다,공공비축제의 수매가 하락이다 해서 농촌을 옥죄는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민들은 길바닥에 나락을 뿌리고 벼포대에 불을 지르면서 '농촌살리기'를 외쳐대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열 번째 맞는 '농업인의 날'이다. 정부는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격앙된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 여느 해와는 달리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농촌지원대책을 요구하는 농심이 크게 바꿔질 것 같지는 않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떡국으로 식사를 하고,떡볶이로 간식을 하고,신토불이 농산물을 가까운 이웃에 선물한다면 힘겨워하는 농부들의 마음이 다소나마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가슴에도 씨앗을 심어 가꾼다는 농부들이 상처받지 않고 흥겨운 농가월령가를 불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