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인수·합병(M&A) 전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중간에 끼어든 외국계 자본만 대거 잇속을 챙기고 있다. 한 발 앞선 정보를 이용,M&A 대상 기업의 지분을 선점한 후 물밑 거래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재주는 '곰(국내 기업)'이 부리고 돈은 '되놈(외국 자본)'이 가져가는 꼴이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한통운 대우건설 대우조선 외환은행 쌍용양회 등 향후 M&A 대상이 될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사모펀드(PEF)나 투자은행(IB)이 미리 지분을 인수하면서 남긴 차익(평가차익 포함)이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M&A가 끝난 기업에서 거둔 차익까지 포함하면 무려 7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매각 규모 1조원대에 달하는 대한통운의 경우 M&A 본게임도 시작되기 전에 외국계가 챙긴 돈만 벌써 6000억원에 이른다. 대한통운의 보증 채권을 발빠르게 확보한 골드만삭스는 향후 출자전환 뒤 지분을 매각할 경우 최소 45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영국계 투자사인 로이드조지는 지난 6월 대한통운의 M&A 기대감이 확산되던 틈을 타 5% 가까운 지분을 장내 매입,불과 넉 달 만에 125%의 수익을 남기고 처분했다.


PAMA도 대주주로 참여한 국내 벤처기업을 통해 채권단의 CB(전환사채) 전환 물량을 주당 평균 2만원대에 지속적으로 받아가 최근 7만원에 매각,3배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도이치인베스트먼트 리먼브러더스 플래티넘자산운용 등도 2∼3년 전부터 대한통운 주식을 싼 값에 사들인 이후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한 사이 전량 처분,수백억원대의 차익을 거둬갔다.




대한통운 인수를 둘러싸고 STX와 금호 등 국내 대기업들끼리 물밑 경쟁을 벌이면서 주가가 급등한 사이 외국계 펀드 여섯 군데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실속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어부지리'가 따로 없다.


내년 이후 매각 예정인 대우조선의 경우 미국계 템플턴자산운용이 이미 2년 전부터 M&A를 겨냥해 주식을 꾸준히 사들여 현재 5.2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당 평균 1만∼1만4000원대에 매입했으며 최근 M&A 등을 호재로 주가가 2만1000원대로 올라 있는 점을 감안하면 평가 차익이 최소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계 플래티넘자산운용 역시 매각 대상인 대우인터내셔널에 지난해 초부터 투자하기 시작,5% 이상 지분을 확보했다. 이 펀드는 올 들어 M&A 기대감으로 주가가 4∼5배 뛴 사이 일부 주식을 처분,158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나머지 들고 있는 지분의 평가 차익까지 합하면 플래티넘은 대우인터내셔널 투자로 700억원 이상을 벌었다. 대우건설의 경우 현재 10% 지분을 들고 있는 외국인은 최근 1년 만에 주가가 2배로 치솟으면서 1850억원에 달하는 평가 차익을 냈다.


두산중공업이 1조원 이상의 자금차입 부담을 무릅쓰고 인수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도 사실상 실속은 중간에 끼어든 외국계 자본이 챙겼다. 캐피털그룹의 경우 대우종기 인수전이 한창이던 2004년 3월부터 대우종기 주식을 끌어모아 현재 500억원 이상의 평가 차익을 기록하고 있다.


정종태·주용석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