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초 국내 퇴직연금제도의 본격 시행이 다가오면서 도입 5년 만에 퇴직연금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홍콩의 사례가 주목을 끌고 있다.
홍콩은 지난 2000년 말 MPF(Mandatory Provident Fund)라는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MPF는 현재 가입자가 전체 근로자(자영업자 포함)의 66%인 221만명,규모는 1314억홍콩달러(미국달러 기준 168억달러)에 달할 만큼 빠르게 급성장했다.
도입 후 3년 정도까지 홍콩 근로자들은 MPF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매우 팽배했다.
지난 2001년 3월 기술주 버블 붕괴로 홍콩증시가 약 2년간 하락하면서 MPF 적립금에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락장에서 펀드 매입단가가 인하돼 2003년 4월 이후 반등장에서 많은 가입자들이 예상보다 높은 수익을 거두자 MPF에 대한 인식이 호전됐다.
◆투자자 교육이 성공의 열쇠
마이클 하 HSBC홍콩 이사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장기 분산 투자 효과 등에 대한 투자자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퇴직연금 제도가 조기 정착될 수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니콜라스 로저스 피델리티홍콩 투자담당 이사는 "지난 2000년 500명의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각각 83%,77%가 '주식'과 '채권'을 정의하지 못했고,90%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소득'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퇴직연금제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투자자의 무지인데,한국 상황도 이 설문조사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판매채널이 강한 회사가 초창기 주도
현재 MPF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판매망이 강한 금융회사가 현재까지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내 200개 이상 지점에서 3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MPF를 판매 중인 HSBC가 33%의 시장점유율(관계사인 항셍뱅크 포함)을 차지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로저스 피델리티 이사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퇴직연금 도입 초기에는 판매망이 넓은 회사가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코닌 알리안츠홍콩 대표는 "하지만 4~5년 후부터는 운용 성과가 MPF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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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PF란
2000년 이전까지는 홍콩 퇴직 관련 제도는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ORSO(직업퇴직계획)가 있었다.
ORSO는 근로자의 3분의 1 정도만이 보호받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고령화 진행 등으로 퇴직 후 사회 보장의 필요성이 급증하면서 강제적인 퇴직연금인 MPF가 2000년 말 등장했다.
이 제도 시행으로 18세 이상부터 65세 미만의 ORSO 미가입자 등은 의무적으로 MPF에 가입해야 한다.
MPF는 확정기여형(DC) 형태만 가능하다.
매달 근로자와 사업주가 각각 급여의 5%씩(최대 1000홍콩달러)을 갹출해 적립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