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국내외 47개 골프코스 설계 김명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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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코스 설계가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직업이다.
로버트 트렌트 존스,피트 다이 등 세계적 코스설계가들이 설계한 곳이라면 모를까,국내 설계가가 설계한 골프장은 설계가의 이름을 잘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에도 뛰어난 코스설계가들이 있다.
김명길 필드컨설턴트 사장(66)은 그 중에서도 한국을 대표할 만하다.
김 사장은 통도CC를 시작으로 최근 개장한 크리스탈밸리CC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47개 골프장을 설계했다.
송추 엘리시안 남촌 이스트밸리CC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골프장들이 그의 손을 거친 곳들이다.
공군사관학교와 서울대 토목과를 졸업한 김 사장은 공군에 근무하면서 비행장 코스설계를 맡은 것이 인연이 돼 24년 동안 골프 코스설계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의 현재 핸디캡은 13정도.
[ 약력 ]
△1938년 경남 울주 출생 △1961년 공사 졸업
△1965년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1982∼84년 국제그룹 근무 △1984∼88년 유신코퍼레이션 근무
△1988년∼필드컨설턴트 사장
△설계한 골프장(47개):통도 88 그랜드 남수원 기흥 춘천 한일(동·서) 안성 블루헤런 자유 필로스 이포 남광주 태영 발안 우정힐스 송추 강남300 클럽비전힐스 마우나오션 에딘버러 스카이힐제주 프리스틴밸리 비에이비스타 이스트밸리 보라 엘리시안 남촌 아시아드 코리아 센추리21 중국청도제너시스 중국연길해란리버 뉴스프링빌 크리스탈밸리(이상 회원제) 사천 발안 비에이비스타 태영 남여주 스카이힐제주 경찰 파크밸리 평택 우리 센추리21(이상 퍼블릭)
◆골프코스 설계의 세계는 어떤 것입니까.
"골프장 설계는 설계자를 끊임 없이 상상의 세계에 머무르게 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응축된 경기가 골프고,이를 연출하는 것이 설계가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나그네가 떠나기 전 그곳에 대해 공부한 만큼 즐기고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골프도 코스를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는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스코어를 내는 지루한 코스보다 매샷 생각을 요구하며 이에 상응하는 샷으로 홀을 공략함으로써 더 큰 기쁨을 얻도록 하기 위해 설계가들은 노력합니다."
◆코스설계가는 일반 골퍼들과 코스 공략법이 다를 것 같은 데요.
"골프는 적은 타수로 경기를 마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스윙이나 퍼트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코스에 나가서는 단지 홀의 가운데로만 가는 수가 많습니다.
자신의 기량에 맞는 '공략 루트'가 따로 있는데 말이지요.
설계가가 구상하는 공략 루트는 일반적으로 '공격적 루트'와 위험을 피해가는 '안전적 루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격적 루트는 완벽한 샷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길이고,안전형 루트는 샷이 다소 잘못되는 경우,또는 1타를 손해보더라도 크게 곤란에 빠지지 않는 길을 말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이냐는 골퍼 개인의 성격이나 기량,그날의 스코어관리와 상관이 있습니다."
◆코스 가운데로만 가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TV 해설가가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잘 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페어웨이의 중간에 '베스트 포지션'은 없습니다.
설계가들이 최적의 포지션을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두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골퍼는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멀리 있는 그린으로부터 티잉그라운드 앞까지 장애물의 종류,모양,위치뿐 아니라 그린의 모양까지 읽어 충분히 계산해야 합니다."
◆골퍼들에게 권하고 싶은 홀공략법을 귀띔한다면.
"첫째 설계가는 홀마다 '보기-루트' '파-루트''버디-루트'를 설정해두므로 골퍼는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장애물(벙커)이 왜 그곳에 배치돼 있는지를 분석해보면 자신의 역량에 맞는 공략 루트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가장 자신 있게 칠 수 있는 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 합니다.
셋째 볼이 낙하해 구르는 방향을 미리 읽는 3차원적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넷째 샷하기 전에 다음 샷을 위한 스탠스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컨대 왼발 내리막 경사에서 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이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스설계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입니다.
먼저 잔디가 잘 안 죽는 골프장,그래서 관리가 쉬운 골프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잔디관리는 코스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양잔디보다 한국잔디를 선호합니다.
개장을 앞둔 샌드파인GC도 사업주 쪽에서는 양잔디를 선호했으나 한국잔디가 관리가 더 쉽다고 설득,결국 한국잔디를 심었습니다.
다음은 진행이 잘되게 하는 일입니다.
플레이가 중단되지 않고 원활하게 흐르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수익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급자들에게는 어렵고 초심자들에게는 쉽게 하면 진행이 원활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이 안 보이는 '블라인드 홀'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장애물 유무를 확인할 수 있어야 공략법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블라인드홀에서는 그것을 못하지요."
◆국내 골프장 중 마음에 드는 홀이 있습니까.
"제가 설계한 골프장 중에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설계했지만 용평GC 6번홀이 설계가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홀이라고 봅니다.
그 홀은 그린 왼편이 둔덕이고 오른편이 내리막이거든요.
제2타가 짧거나 그린에 떨어지면 볼은 오른쪽으로 흘러 위험에 빠집니다.
그곳에서는 그린 왼편 둔덕을 맞혀 볼이 그린으로 굴러오게 해야 합니다.
반듯하게 그린을 향해 친 샷보다는 설계가의 의중을 꿰뚫고 샷을 했을때 공략하는 맛도 있고 기쁨도 두 배가 되지 않을까요.
설계가들은 그런 홀을 '3차원적 설계''입체적 설계'라고 합니다."
◆설계가들은 '명문 코스'를 어떻게 선정합니까.
"'설계가는 좋은 코스는 만들어도 명문코스는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코스가 반드시 명문 코스는 아니니까요.
좋은 코스는 설계만 따지지만,명문 코스는 그외에도 서비스나 운영까지 따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100대 골프장'이니 '10대 골프장'이니 하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코스를 꼽는다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 있는 사이프러스 포인트클럽이고 조형면에서는 미국 PGA웨스트 스타디움코스입니다."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 영국에 갔는데 할아버지와 손자인 듯한 사람이 플레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코스는 그저 다듬어놓은 잔디와 그린이 눈에 띌 정도로 소박한 곳이었지요.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골프장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너무 '겉모습'에만 치중합니다.
잡초 같은 잔디 위에서 남녀노소가 칠 수 있는 골프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야 비용이 낮아지고 그린피도 싸져서 누구나 칠수 있게 되고,그때서야 비로소 '골프 대중화'를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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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보는 것과 코스가 다르네 ?
골프코스는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가 다를 때가 있다.
이른바 '착시 현상'때문이다.
김 사장은 "모든 것이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면 흥미가 반감될 것"이라며 "착시를 알고 이를 극복하면 스코어도 좋아지고,희열도 배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사장을 비롯한 골프코스 설계가들이 고려하는 대표적 착시현상을 소개한다.
①설계가는 홀이 짧을수록 굴곡(undulation)을 적게 하여 길게 보이게 하고,길수록 굴곡을 많이 하여 짧게 보이도록 한다.
또 중간에 장애물이 많으면 짧게 보인다.
②역광의 경우 실제 길이보다 멀리,순광의 경우는 그 반대로 짧게 느껴진다.
③홀 양쪽의 숲이 무성하고 나무의 키가 클수록 협소하게 느껴진다.
④그린 뒤편이 낮고 나무가 없는 홀도 하늘이 열려 있으면 멀어보이고,나무로 둘러싸여 숲을 이루고 있으면 가깝게 보인다.
⑤그린에서는 배경의 산이 이루는 선,그린의 둘레가 이루는 선이 강할수록 '퍼트 라인'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⑥내리막 홀에서 골퍼들은 자신이 보낼 수 있는 지점보다 더 먼 곳을 목표로 착각한다.
그래서 실제로 볼이 낙하하는 곳의 장애물을 무시하게 되고 볼이 장애물에 잡히는 수가 많다.
⑦오르막 홀은 멀어 보인다.
⑧'도그레그 홀'은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판단하는 것만큼 굽어있지 않으므로 지름길(short cut)을 택할 때 방향 설정에 참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