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딜러 정순정(엄정화)이 다섯 남녀를 참혹하게 살해한다.


범죄현장에는 만화 오로라공주 스티커가 남겨지고 오형사(문성근)와 경찰들이 수사에 나선다.


배우출신 감독 방은진이 연출한 영화 '오로라 공주'는 할리우드영화 '몬스터'처럼 여성의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이색 스릴러이다.


범인은 일찌감치 노출되고 범행동기도 중반쯤이면 확연해진다.다섯 남녀가 살해대상으로 정해진 사연만이 최후의 관심사로 남게 된다.이마저 수사 결과 밝혀지는게 아니라 엔딩의 추가신으로 전모를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관객과의 두뇌게임으로 풀어가는 스릴러가 아니다.


오 형사가 범인을 알아내는 과정도 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범인과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된다.


스릴러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엔진은 크게 두 가지다.


범인이 연약한 여성이고,살해방식은 잔혹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던 정황을 구축한 '몬스터'와 달리 이 작품에서 정순정은 희생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피살자들은 거의 저항을 하지 못한다.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범행장면이 범인의 일방적인 시점으로 포착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크게 약화되고 만다.


수사관들의 추적이나 피살자의 거센 저항 등이 살인장면과 긴밀하게 병치됐더라면 보다 흥미로웠을 것이다.


정순정이란 캐릭터도 매력이 별로 없다.


도입부에서 학대받는 어린이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의 동정심을 얻고 있지만 이 장면은 너무 짧다.


정순정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경직되고 완고한 성품으로 주변 인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양들의 침묵'의 살인마 한니발이 매력적인 까닭은 그가 여수사관 스털링에게 시종 깊은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오로라 공주'가 부조리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허점투성이의 사법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무고한 희생자들을 양산할 것이란 경고다.


따지고 보면 정순정도 희생자 중 하나다.


또 우리네 일상에서 권선징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십자가를 늘 곁에 두고 사는 오 형사만 봐도 갈수록 불행의 늪에 빠져든다.


27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