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사천성 스취 인근의 들판에서 야영하던 라마불교의 스님들이 탐험대 일행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이들은 남루한 옷에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용모를 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인사를 하며 반긴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칭하이성(靑海省) 위수(玉樹)에서 쓰촨성(四川省) 북부의 변방 도시 더거(德格)로 가는 길.도시락 배낭을 등에 진 처녀 목동들이 양떼와 야크를 몰고 일찌감치 일터로 간다.
유목민 생활이 그냥 짐승들을 들판에 풀어놓고 거두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아침이면 이들을 몰아 풀이 있는 들판으로 안내해야 하고,지켜야 하며 저녁이면 함께 모여 밤을 샐 수 있는 곳으로 데려와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입김 호호 불어가며 들판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바쁘다.
학교로 가는 아이들은 탐험대의 차량을 보고는 중국식 거수 경례를 척 갖다 붙인다.
위수에서 마둬(瑪多)로 되짚어 가다 퉁톈허(通天河)대교를 건너 해발 4700m의 안바라산(安巴拉山) 고개에 이르자 '四川界(쓰촨제)'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이 칭하이성과 쓰촨성의 경계라는 뜻이다.
쓰촨성의 변경 도시인 스취(石渠)현에 이르렀으나 풍경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곳 역시 티베트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본래 이곳은 '캉바(康巴)'라는 동티베트 지역이었으나 중국이 티베트를 차지한 뒤 칭하이와 쓰촨으로 나눠졌다.
넓디 넓은 들판에는 유목민들의 천막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말을 탄 남자는 들판을 가로질러 순찰을 나선다.
서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부 영화에서처럼 살벌하지 않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탐험대의 차량이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흙길을 달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인사를 건네며 이방인을 반긴다.
옷은 남루하고 얼굴에는 세수를 언제쯤 했을까 싶을 만큼 땟국물이 흘러도 마음만은 때묻지 않은 순백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말을 탄 사내도,물지게를 진 아낙네도,야크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도,오토바이와 경운기를 타고 다니는 라마승들도 해맑은 웃음으로 낯선 이를 반겨준다.
청명한 하늘 아래 굽이굽이 갈래 지어 흐르는 냇물과 도처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양과 야크들의 풍경은 '평화' 그 자체다.
하지만 티베트인의 삶에도 변화는 오고 있다.
스취현만 해도 그렇다.
동행한 칭하이성 관리에 따르면 20년 전 스취에는 단층집만 있었고 도로 사정도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도 들어섰고 도로도 상당 부분 포장됐다.
야크와 양 등을 길러 900km나 떨어진 청두(成都)로 실어보낸다.
'紫光閣(쯔광거)'이라는 상호를 건 스취의 한 문구점 유리문에는 '안젤라'(安又琪)라는 중국 여자 연예인과 함께 한국 가수 '비'의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전통적인 유목 생활 대신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쓰촨성 중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장족(藏族·티베트인)이라고 한다.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장족들의 힘만으로는 경제적 발전이 어려워 중국 정부가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도시에 정착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장족의 도시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이 같은 티베트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큰 동력은 '도로'의 변화다.
스취에서 더거로 가는 길의 대부분은 '공사중'이다.
비포장 흙길을 포장도로로 바꾸는 공사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높은 산과 고개가 많은 중국 서부의 도로 가운데 대부분이 흙길이어서 자동차들이 제대로 달릴 수 없다.
해발 4379m의 췌얼산(雀兀山) 고개를 구비구비 오르는 길도 모두 비포장이다.
덕분에 더거에는 밤 늦게야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더거에서 티베트 동부의 변경인 창두(昌都)로 가는 길은 '고난의 행군'이라 할 만했다.
총 340여km 가운데 200km가 공사 중이다.
더거를 떠난 탐험대는 채 30km를 못 가서 비포장길을 만났다.
장족 마을과 경치가 아름다운 계곡을 지나 구비구비 산길을 올라 해발 4313m의 고갯마루에 오르자 산은 온통 설경이다.
설경의 아름다움에 빠질 겨를도 없이 내려가는 길 역시 꼬불꼬불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을 다 내려오니 이번에는 협곡이다.
'창장(長江) 상류 천연보호구역'답게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하지만 장다(江達)현을 지나면서 길은 다시 공사구간.'전방폭파,주의''전방시공,차량만행(慢行)' 등의 경고문이 수시로 나타난다.
산을 부숴 길을 내고,길가 벼랑에 석축과 옹벽을 쌓는 공사는 '장다궁루(江達公路)' 전 구간에서 진행 중이다.
일단 공사를 시작하면 모든 구간을 파 뒤집어 놓고 보는 것인지….공사 기간에 통행하는 차량들의 편의는 아예 관심 밖이다.
이 때문에 이 길을 지나는 차량들은 10여m가 멀다 하고 진창과 물웅덩이,불쑥 솟은 돌덩이와 씨름하며 달리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다.
불과 130km를 달리는 데 무려 10시간이 걸렸다.
탐험대 차량들이 큰 사고나 손상 없이 험로를 달려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하루 17시간 동안 탐험대를 고생하게 만든 것은 360km의 거리가 아니라 비포장 흙길과 공사 중인 '도로'였다.
중국 서부가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전 구간 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대개발'의 일환이다.
도로를 정비해야 서부와 동부의 원활한 소통과 물류가 가능하기 때문.도로변 곳곳에 '인민의 도로는 인민이 건설하고 관리한다'는 구호가 요란하다.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을 시작한 이래 새로 건설하거나 정비한 도로의 길이가 지구를 몇 바퀴 돌고도 남는다는 얘기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소수민족이 밀집한 지역에 대한 정치·군사적 요인도 도로건설의 큰 요인이지만 어쨌든 도로의 대폭적인 신설과 정비가 유목생활에 의존하는 티베트인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창두(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