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검찰이 쥐죽은 듯 조용하다. 김종빈 총장의 퇴임을 전후해 평검사회의를 잇달아 여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을 것 같았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청와대와 총리까지 나서서 '시대정신'과 '민주적 통제'를 언급하며 전방위로 밀어붙이자 전투의욕을 상실한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도 같은 총장이 "더 이상 동요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겨서일까.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차기 총장 인선이라는 현실이 목전에 닥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출범 이후 사사건건 충돌하며 미운털이 곳곳에 박힌 검찰이다. 때문에 이번 사태가 자칫 코드형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검사들의 입을 굳게 틀어막고 있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평검사는 "김 총장처럼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강단 있는 분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기류는 검찰의 이런 희망사항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이번 사태가 검ㆍ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직자 부패수사처 문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검찰총장 제청권자인 천정배 법무장관은 '개혁성'이 인선기준임을 못박았다. 여차하면 검찰에 개혁의 메스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에 다름아니다.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도 깊은 것 같다. 김 총장의 사직서를 받아든지 20일로 1주일째에 접어들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도 엄연히 행정부의 일부인 만큼 그 수반인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총장자리에 앉히면 그만이다. 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낙점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진정한 검찰 독립이 이뤄지려면 (외풍에 맞서) 옷벗는 총장이 5명 나와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힘들다는 얘기다. 조만간 새 검찰총장을 맞게 될 검찰이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정치적 중립을 확실히 지켜낼지가 주목된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