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도를 넘어선 '삼성 때리기'가 해외 유수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까지 무산시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 전망이다. 미국의 세계적 MP3플레이어 메이커인 애플컴퓨터가 삼성전자와 낸드 플래시메모리 합작 생산을 추진하다 적대적인 수준에 가까운 국내의 반기업 정서를 보고 뜻을 접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애플측이 합작 협상을 포기하고 돌아가면서 남긴 말은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는 경멸이었다고 한다. 애플측은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인 윤종용 부회장이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가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1면 톱 사진으로 실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놓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연일 맹공을 퍼붓는 모습을 보면서 아연실색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결정적으로 국감장에서 "삼성전자가 낸드 플래시를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애플에 대량 공급함으로써 공정거래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받아 조사를 검토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오자 전략적 제휴선을 바꾸기로 마음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현재 다른 반도체 메이커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로 하고 미국 현지에 반도체 라인을 짓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로서는 경영 외적인 이유로 애플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삼성이 애플과 공동으로 세우려고 한 라인은 총 4조원의 투자비가 들어가는 300mm웨이퍼용 낸드 플래시메모리 라인.삼성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아이팟 나노'를 앞세워 세계 MP3 업계를 휩쓸고 있는 업체를 안정적인 수요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애플 역시 세계 최고의 플래시메모리 메이커인 삼성전자로부터 핵심 부품을 고정적으로 제공받음으로써 시장 선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양사는 제휴 성사시 반도체 합작 라인을 최근 2기 기공식이 끝난 화성사업장에 건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애플이 부담하는 투자비는 20억달러에 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합작 무산은 적지 않은 경영 손실이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도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며 "일부의 과도한 비판이 애플을 돌아서게 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하반기에 생산하는 낸드 플래시메모리 총 생산량의 40%를 구매키로 약정한 '빅 바이어(Big Buyer)'다. 신제품인 아이팟 나노가 전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가자 최근 삼성 측에 낸드 플래시메모리 추가 구매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합작까지 제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업부는 지난 3분기 애플에 낸드 플래시메모리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길을 트면서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등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여 가고 있는 추세다. 조일훈·이태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