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전국학력시험을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및 지역별로 학력 서열이 매겨진다는 이유로 폐지했던 시험을 40여년 만에 다시 살리기로 한 것.이에 따라 오는 2007년부터 일본 공립초등학교 6학년생과 중학교 3학년생은 국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전국 단위로 평가하는 학력고사를 보게 된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교육 시스템을 가진 일본이 교육 제도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고 있다. 평준화를 근간으로 한 일본의 공교육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떨어뜨리고 교육의 질도 크게 하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이미 일선 교육 현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도쿄도는 일본 최고의 명문고인 히비야(日比谷) 고교의 학생 선발 방식을 추첨제에서 시험제로 전환했다. 일본 굴지의 기업들도 사립학교 설립에 나섰다. 세계적인 일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영국 이튼 스쿨을 본떠 만든 명문 사립고인 가이요 중등교육학교가 대표적이다. 부적격 교사 퇴출제도도 강력하게 시행한다. 한 번 임용되면 30년을 교단에 설 수 있는 '철밥통' 제도로는 교사의 질 향상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교육심의회는 최근 교사의 자격을 10년마다 다시 심사하는 '교원면허증 갱신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수업 내용에 오류가 많고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교사,학생과의 의사소통을 아예 피하는 교사는 '부적격 교원'으로 판정해 면직시키거나 일반직 공무원으로 발령낸다. 한 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지식산업 시대를 맞아 평등주의 교육을 바꾸려는 노력이 일본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은 요지부동이다. 중동고 이화여고 등 서울의 사립학교를 자립형 사립고로 바꿔 한국판 이튼스쿨로 육성하고 싶지만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귀족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에 밀려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초보적인 수준의 교원 평가제 도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준화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살 길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고상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신성장산업실장은 "교육 제도가 우수한 학생들이 더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 학교를 만들면 교육이 서열화된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열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며 "서열화는 고착화만 되지 않으면 시스템을 활기 있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평준화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장점 발굴이 아닌 단점 보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며 "대입 제도를 계열별로 다르게 하고 교과 과정도 다양하게 해 고교 교육이 대학 교육을 위한 선수 교육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립형 사립고,특수목적 고교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현청 대교협 사무총장은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자율학교,특수목적고 등을 다양하게 허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잘하는 학생에게 강력한 인센티브를 줘 학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평준화를 보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선웅 위스콘신 밀워키대 교수는 한국교육개발원이 편찬한 그의 논문집에서 "교원 임용, 학생 선발, 등록금, 교육과정 결정이 자유로운 사립고교를 많이 만들어 교육의 다양성을 꾀하고 이를 대학 입시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 산업·기업경제부장은 "교육부가 거머쥐고 있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나 다른 부서로 나눠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며 "기술 교육을 하는 실업계 고교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교원의 질 향상도 시급하다. 홍후조 교수는 "현재 교사들 중 상당수가 교원 자격증만 있지 학생을 가르칠 능력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봉철 외대부속 외국어고 교장은 "현재 자체적으로 학생들의 평가를 모아 교사에게 전달해 주는 방식의 교사 평가제를 시행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며 "평가가 있어야 교사들이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고 그 이익이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