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확산으로 전 세계에 방역 비상이 걸린 가운데 현재 유일한 공인 치료약 '타미플루' 제조사인 스위스 로슈에 특허권을 포기하라는 국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로슈가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하는 체제로는 10년간 쉬지 않고 만들어 봐야 세계 인구의 20% 정도를 치료할 수 있는 물량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까지 나서서 로슈에 독점을 포기해 대량 생산의 길을 터줘야 한다며 압력을 넣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 국마다 타미플루를 확보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어 수급 사정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허권 포기 압박 대만 질병관제국 궈쉬쑹 국장은 11일 뉴욕타임스를 통해 "대만 과학자들은 타미플루 제조 방법을 터득했으며 수개월 안에 대량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히고 "로슈가 특허권을 포기하는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주 제네바 WHO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업의 지식재산권이 생명과 직결된 약을 공급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며 제약사측의 결단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WHO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독점 체제가 유지되는 한 로슈가 앞으로 10년간 쉬지 않고 만든다고 해도 세계 인구의 20% 정도를 치료할 수 있는 물량밖에 안 된다. 독점 체제로 인해 한 사람 치료분인 10알에 4만2000원(국내 판매가격)이나 한다. 이 때문에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개발도상국들은 자금이 없어 오히려 치료의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제약사 반발 이에 대해 로슈를 포함한 제약업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신약 특허권이 보장돼야만 제약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무릅쓰고 다음 신약 개발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터프츠대학 부설 신약개발연구센터에 따르면 신약 개발 비용은 임상실험 비용 부담 증가로 지난 20년 사이 5배 이상 급등했다. 2003년 기준으로 신약 하나를 상품화하려면 평균 8억9700만달러(9000억원)가 소요된다는 통계도 있다. 제약업계 로비 단체인 미국 의약 리서치 제조업 협회는 지난 10일 로슈를 대변,"특허권 포기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로슈측은 또 "타미플루를 생산하려면 1년간 10단계의 복잡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다른 업체들이 단기간 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출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 회사는 대신 WHO에 300만명을 치료할 수 있는 타미플루 3000만 캡슐을 무상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확산되는 조류독감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조류독감은 인도를 거쳐 최근에는 터키 루마니아 등 유럽권과 남미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감염자는 100여명,사망자도 60명에 이른다. 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조류독감 사망자 수는 500만명이 될 수도 있고 1억5000만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 연구진은 조류독감의 바이러스 구조가 1918년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거의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