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농가 조류독감 노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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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예보 발령 나흘을 앞둔 지난 10일 취재차 찾은 전남 나주시의 한 오리농장.이곳에서 만난 농장주인 박모씨는 "조류독감이라는 말에 오리보다 내가 먼저 노이로제에 걸려 죽게 생겼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가 이렇게 속을 썩이는 것은 조류독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물론 박씨도 2003년 12월 나주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때문에 자식같았던 오리 1만5000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다.
오리를 납품받던 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사육대금을 받지 못한데다 축사 신축을 위해 농협에서 대출받은 1억여원에 연체이자가 계속 보태지면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조류독감보다 박씨를 더욱 화나게 만드는 것은 조류독감에 대응하는 행정기관의 전시행정이다.
"정부는 조류독감 예보를 내리겠다고 발표해 놓고도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고 있어요."
방역장비 구입을 위한 정부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사육농가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농민들은 또 평상시 방역도 매우 중요한데 꼭 일이 터져야만 방역차량을 동원하는 등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며 전시행정도 질타했다.
농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조류독감과 관련,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닭이나 오리 등은 익혀 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국민들은 마치 아예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처럼 생각하니 참 큰일입니다.
정부는 이런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줘 올바른 소비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전국오리협회 이신 광주전남지회장은 "조류독감 예방에 소홀함이 있어선 안되겠지만 상황을 너무 침소봉대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조류독감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사람들 입에 한번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소비 급감과 가격폭락 현상이 발생해 고스란히 사육농가의 부담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조류독감 얘기가 불거지면 모두가 우리들로부터 등을 돌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한 농민의 혼잣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광주=최성국 사회부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