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 설립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김승유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그는 지난 7~8월 두 달여 동안 국내 대형 기관투자가와 잇따라 접촉하며 '하나금융지주 주식 1300만주를 인수해 줄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 지주회사법상 은행이 자회사 간 주식 교환으로 보유하게 되는 지주회사 주식은 6개월 이내 처분케 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노'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 의장은 결국 해외 IR(기업설명회)에 나선 끝에 골드만삭스를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여 1300만주를 매각키로 계약했다. 김 의장은 "국내 기관에 매각하고 싶었지만 임자가 나서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위태로운 금융 주권 5일 기준으로 하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76.8%다. 골드만삭스가 오는 12월 출범하는 하나금융지주 지분 1300만주를 인수하게 되면 외국인 지분율이 81%에 육박한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이미 85%를 돌파했다. 외국계인 한국씨티 SC제일 외환은행은 물론이고 신한지주(65%) 부산은행(62%) 대구은행(62%) 등도 외국인 지분율이 경계 수위를 넘어섰다. 정부 지분 매각을 앞두고 있는 우리은행만이 외국 자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은행 산업이 송두리째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 금융 전문가들도 "한 나라 경제에 혈맥 역할을 하는 은행의 지분이 외국 자본에 과다하게 넘어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선 은행을 통한 정부의 시장안정 정책 등이 먹혀들기 어렵게 된다. 일례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금융감독원의 '8·30 조치' 후 다른 은행들은 주택담보 대출이 크게 둔화됐지만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여전히 증가세가 지속됐다. 만약 경영진이 은행의 이익을 양보하고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경우 외국인들이 주주권을 발동,경영진 교체 등과 같은 실력 행사에 나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은행 이익의 과실이 배당금으로 대거 해외 유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민은행의 지난해 배당 성향(총 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46.7%였다. 올해는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이 1조7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배당 성향이 작년 수준으로 정해지면 외국인 주주들은 6350억원(1조7000억원×46.7%×85%)을 챙긴다. 은행권 전체로 볼 때 올 한 해 2조원가량이 유출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완전 내수산업인 은행의 이익은 100%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의 주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출 기업들의 배당을 외국인 투자가가 받아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기관 은행지분 매수 확대해야 금융 주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은행 지분 소유 제한 등 정부의 규제 탓도 있지만 국내 투자가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하나은행 사례에서 보듯 국내 기관들이 은행주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국민은행이 자사주 2742만주(8.15%)를 매각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80%를 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자사주의 절반가량은 국내에 팔겠다"고 공개 선언했었다. 하지만 입찰 과정에서 외국계는 대거 응찰한 반면 국내 기관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아 결국 물량의 70~80%가 외국계로 넘어갔다. 국민은행 주가가 그 후 50% 가까이 상승했으므로 국내 기관들은 그만큼 이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상무는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은행주를 매입해 장기간 보유할 수 있는 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기관들이 은행주를 선호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장기투자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은행 지분의 불균형이 너무 심각하다"며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기관들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