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 특허청장·jongkkim@kipo.go.kr > 우리는 예로부터 나누고 베풀 줄 아는 민족이다. 나눔과 베품의 정신은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에서도 잘 나타나 있고,조선시대 향약에도 스며 있다. 걱정거리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전통은 더 없이 지혜롭고 아름답다. 나눔에는 물질의 나눔과 지식의 나눔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물질도 그랬지만 지식의 나눔에 유독 너그러움을 보여왔다. 지식의 축적은 개인 인격의 수양에 그 목적이 있고,부(富)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식에 독점·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지식재산권제도는 우리의 전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지식재산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민 설득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스탠퍼드대학의 폴 로머 교수는 "지식은 사용할수록 늘어나는 무한정의 재산"이라고 갈파하였다. '나누고 베품'으로써 커지는 지식의 속성을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식재산권제도는 나누고 베품이 절실한 분야에 오히려 독점권을 인정한다. 독점권을 인정하는 대신 지식 내용을 공개하여 만인이 활용토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최대한의 지식 공유가 가능케 하는 제도인 것이다. 특허제도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이후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20세기 미국 산업발전의 단초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지식재산권을 잘 보호해 줄수록 지식 창출과 확산이 더 활성화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지식 관리에 성공한 국가로 꼽힌다. 세계은행은 40여년 전 비슷한 수준이었던 가나와 한국이 지금은 1인당 GDP가 40여배 차이 나는 원인에 대해 지식의 축적과 활용의 차이를 사례로 들곤 한다. 최근 정부는 기술이전정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식의 창출도 중요하지만 창출된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에 휴면특허를 제공하는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독점권을 부여받은 지식이지만 스스로 나눠 쓰겠다는 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혜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부품·소재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대기업의 경쟁력도 함께 높이는 상생의 전략인 것이다. 단기적인 수익성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산업계의 호응이 커지고 있다. 홍익인간의 나누고 베푸는 정서가 우리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듯이 우리 기업사회에 지식나눔 문화가 뿌리내려져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구조가 치유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