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래 규제까지 예측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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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7일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논란과 관련,"삼성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삼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오래 전 만들어진 지배구조를 사후 마련된 규제 입법에 따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 지배구조를 옥죄고 있는 규제는 금산법을 필두로 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규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3가지.이들 법령이 삼성을 표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삼성만이 유일하게 동시에 걸려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 전개될 줄 알았더라면 과거 에버랜드가 생명 주식을 취득하거나 생명과 전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미래의 규제를 미리 예측해 출자 구조를 짤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재출연이 순환출자 원인(遠因)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옆에서 받치는 구조로 돼 있었다.
지금처럼 '에버랜드→생명→전자→카드'로 이어지는 양상은 비슷했지만 카드가 에버랜드를 지배함으로써 완벽한 원형 형태를 만들어놓은 현 구조와는 차이가 있었다.
현 구조에서 카드가 에버랜드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1998년 말 공정위의 명령으로 이듬해 중앙일보를 계열 분리하면서 중앙일보가 갖고 있던 에버랜드 지분을 카드가 사들였기 때문이다.
또 이 회장이 생명을 지주회사로 삼아 지배해 온 구조가 뒤틀어진 이유는 1999년 삼성자동차 부실 처리를 위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은 데서 비롯됐다.
그 전까지 이 회장은 생명의 최대 주주(10.0%)였다.
이 회장은 현재 50만주의 생명 주식을 갖고 있지만 현재 생명의 대주주는 에버랜드로 바뀐 상황이다.
당시 삼성자동차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던 이 회장의 사재 출연은 주식회사 제도의 '유한책임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도 지난 27일 이 문제에 대해 "옛날에 삼성자동차 부채에 대해서 삼성 계열사와 사주가 돈을 물어내라고 했을 때 한참 갸우뚱거렸다.
주식회사 유한책임제도 자체가 그런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고 소회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회장과 삼성은 당시 사재 출연하라는 사회적 요청을 수용했고 그것이 삼성의 현 지배구조를 착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에버랜드의 생명 출자를 늘리고 카드로 하여금 에버랜드의 주주가 되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결국 큰 틀에서 보면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는 이 회장이 생명 주식을 채권단 등에 내놓으면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기치 않은 금융지주회사법
삼성이 현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지난해 4월.참여연대가 "에버랜드는 규제받지 않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라는 주장을 들고 나오면서다.
삼성 관계자는 "관련 법령을 미리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것은 우리의 실수지만 부동산을 주력으로 하는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해 바뀐 회계제도에 따라 에버랜드의 생명 주식 평가방식을 '지분법'에서 '원가법'으로 변경해 규제를 벗어났지만 참여연대는 금융당국에 에버랜드에 대한 특별 감리를 요청하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