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휴대폰 잃어버리면 '끝'‥주워도 안돌려주고 인터넷서 '복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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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산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최신형 휴대폰을 택시에 놓고 내린 최기연씨(29·서울 송파구)는 야박해진 '휴대폰 인심'을 절감했다.
휴대폰을 찾기 위해 2시간 동안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
주변에 하소연해 봤지만 "장물아비에게 넘기면 1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는데 왜 돌려 주겠느냐. 기다리지 말고 포기하라"는 시큰둥한 반응만 얻었다.
중고 휴대폰 판매량이 2년 새 4배가량 늘어나는 등 중고폰 거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훔치거나 습득한 휴대폰을 개조,중고폰으로 파는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신 중고폰은 50만원대 중반
28일 인터넷 장터사이트 옥션(www.auction.co.kr)에 따르면 2003년 5만4800여대였던 중고폰 거래량이 지난해 15만5000대로 3배가량 늘어났다.
올해도 1분기 4만6000대,2분기 4만8000대 등으로 지속적으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중고폰이라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옥션 등 인터넷 장터사이트에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모델은 출시 6개월~1년 정도인 신형 휴대폰.애니콜 슬림폰(SCH-V740),스카이 DMB폰(IMB-1000) 등은 사용상태에 따라 50만원이 넘는 상품도 많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토로라 레이저폰(MS500)도 상태가 좋을 경우 신상품 가격의 80%인 40만원가량 줘야 살 수 있다.
옥션 관계자는 "신형 휴대폰을 갖고 싶지만 불경기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고객들이 중고 휴대폰을 사고 있다"며 "공급과 수요가 나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주워도 안 돌려줘
최근 신형 중고폰 공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것은 분실 휴대폰을 매집해 판매상에게 넘기는 '브로커 조직'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주워 서울 용산전자상가 등에 갖고 가면 2만~3만원이면 일련번호를 바꿔준다.
흔히 '폰세탁'이라고 부르는 일련번호 변경과정을 거친 휴대폰이 인터넷 등을 통해 시중에 유통된다.
관련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의원이 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정통부 산하 전파관리소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8월 말까지 사용자가 있는 휴대폰의 일련번호를 훔치거나 주운 휴대폰에 이식해 만드는 불법 복제폰을 단속한 결과 복제 휴대폰 대수가 4718대로 지난해 858대에 비해 449.9% 증가했다.
전자상가 테크노마트에 있는 휴대폰 대리점 퍼스트텔레콤 관계자는 "휴대폰을 잃어버린 후 되돌려받지 못해 추가요금을 물고 보상구매를 하는 고객이 1년 새 3배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휴대폰을 잃어버린 고객들 대부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주일 이상 기다린 후 새 폰을 구입했지만 중고폰 장물거래가 일반화된 올해는 아예 포기하고 분실한 다음날 바로 새 폰을 사러 온다"고 덧붙였다.
◆제조사도 막을 길 없어 전전긍긍
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부터 이동통신회사에 통화도용방지시스템(FMS:Fraud Management System)을 운용,복제폰 양산을 막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폰세탁을 해 주는 업자들이 많은 데다 출시된 지 6개월 이상 된 휴대폰에는 적용이 힘들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 관계자는 "최신폰들도 마음만 먹으면 '세탁'이 가능하다"며 "휴대폰을 세탁해 중고폰으로 불법 유통하는 업자들이 증가하면서 신상품 판매량이 줄어드는 등 업계의 타격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