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한국 대학의 수준은 심심하면 한번씩 논란이 된다. 여러 가지 대학 평가가 계속해 나오지만 그 때마다 한국 대학 가운데 '세계 100대 대학'에 끼는 곳은 하나 정도거나 아예 없는 수가 많다. 대개 200등 안에 하나는 끼어있지만. 그런데 최근 중국의 상하이교통(上海交通)대학이 만든 아시아 대학 평가표에는 아시아 92개 대학 가운데 한국 대학이 8개가 들어있다. 믿거나 말거나 중국 사람들의 평가를 한번 참고해 보자. 우선 이 등급표의 10등 안에 한국 대학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서울대가 겨우 20등에 들어 있을 뿐이다. 1,2등은 일본의 도쿄대(東京大)와 교토대(京都大)가 차지했고, 3등에 호주국립대를 넣었다. 4,5,6등이 일본의 오사카(大阪), 도호쿠(東北), 나고야(名古屋)대학이고, 7등과 8등에 호주 멜버른대와 이스라엘의 헤브루대학을 넣고 있다. 그리고 9등과 10등 역시 일본 차지로 홋카이도(北海道)와 규슈(九州)대학을 꼽고 있다. 중국대학 가운데 최고위는 칭화대(淸華大)로 24등이고,뉴질랜드 최고대학으로는 오클랜드대가 26등,홍콩 과기대는 28등,인도공업대는 29등이다. 그 뒤로 한국의 대학들이 올라있는데, 연세대(36) 과기대(42) 포항공대(45) 한양대(67) 고려대(70) 경북대(72) 성균관대(76) 등이다. 이 목록에서 한심한 건 그 등수만이 아니라,한국 대학의 한자(漢字)표기이다. 서울대가 漢城國立大學으로 돼 있고,고려대가 韓國大學이다. 이런 멋대로의 대학 이름 표기 자체가 우리 대학 수준이 별로 높지 않대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자연스런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학 수준을 높이기 어려운 이유는 참으로 많다. 최근에는 대학 교수들이 연구비를 횡령한다 하여 지면을 장식하더니,최근 감사원은 교육부가 대학교수 확보율을 낮춰서 대학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교육당국이 인문사회계열은 학생 25명당 교수 1명, 자연계열은 학생 20명당 교수 1명을 확보토록 한 '대학설립ㆍ운영규정'을 무시하고, 교수확보율을 기준보다 50% 이상 낮춰 운영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 이후 학과나 학부를 증설한 전국 28개 대학의 경우 교수확보율을 보면 적정 입학정원이 4만2000여명인데,실제 입학정원은 49% 많은 6만2000여명으로 책정됐다. 이처럼 입학정원이 부풀려져 지난해의 경우 고졸생 59만명에 비해 대입정원은 65만명에 달하는 '공급초과현상'이 나타났다. 교수가 적고 학생이 많으면 교육이 부실해질 것은 뻔한 이치다. 교수의 연구비 횡령이 횡행하고,온갖 비리가 저질러진다는 한국 대학이 세계의 대학 랭킹에서 밑으로 처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대학은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세계 대학 평가에서는 늘 아래 줄에서 서성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론 한국 대학이 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정부 간섭이다. 입으론 항상 대학 자율화를 말하지만,정부가 그 막강한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대학은 수준을 높이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정부는 대학 자율을 구두선(口頭禪)으로 삼고 있지만,고교 서열화는 안 되고,기여 입학도 안 되고,본고사도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럴 바에야 신입생을 정부가 뽑아 각 대학에 배정해주는 편이 합리적이다. 공부가 시원찮은 학생은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공부 잘하는 학생은 수준 낮은 대학으로 보내면,전국 대학은 몇 년 안에 완전 평준화될 것이다. 한국 대학이 세계 랭킹에서 낮아진들 어떻겠는가? 그 대신 모두가 같은 수준의 대학을 갈 수 있는 평준화된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평등이념이 지나친 세상에 교육은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 대학 교수 시절에 필자가 가졌던 생뚱맞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