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면 추석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면 시끌벅적 즐거운 한편으로 문제도 생긴다. 여자들은 종일 일하는데 남자들은 떠들며 놀다 눈총을 받고,동서끼리 누구는 일찍부터 와서 일하는데 누구는 뒤늦게 얼굴만 슬쩍 내민다며 티격태격한다. 있는 집에선 재산 분배를 놓고,없는 집에선 부모님 용돈이나 병원비를 어떻게 나눌까로 신경전을 벌인다. 앞으론 이런 일도 사라질 것이다. 둘도 많다고 하나만 낳거나 아예 안낳겠다고도 하니 명절이라고 모여서 북적대며 웃을 일도,신경을 곤두세울 일도 생길 리 만무하다. "무슨 그렇게 썰렁한 얘기를" 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눈 앞에 닥친 현실이다. 현재 인구가 유지되자면 합계 출산율이 2.1은 돼야 한다는데 우리의 경우 3년 연속 1.2 미만인 초저출산국이 됐다. 이대로 가면 현재 4830만명가량인 국내 인구가 2020년을 고비로 감소해 2100년엔 162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인구밀도가 워낙 높은 만큼 출산율 저하를 여성과 노년 인력 활용 및 삶의 질 향상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있지만 젊은 사람은 적고 노인만 흘러 넘치는 나라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정부는 출산장려책을 강구하다 못해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기업 역시 출산율 감소가 노동력 저하와 고객 감소로 이어진다는 인식 아래 각종 출산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연간 35만여건의 낙태가 이뤄진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낙태수술을 받은 여성의 42%는 미혼이고,기혼의 36.6%가 낙태를 경험한다는 건 출산율 제고책이 얼마나 겉돌고 있는지 전한다. 낙태에 대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미혼은 물론 기혼여성도 낙태를 결심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하거나 임신 후 음주나 약물복용으로 태아의 건강을 염려할 수도 있고, 아이를 갖더라도 몇 년 뒤였으면 생각할 수도 있다. 당사자가 키울 수 없다는데 무조건 낳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낙태가 범죄율을 낮췄다는 보고도 있다.(스티브 레빗ㆍ'괴짜경제학') 그렇더라도 그토록 엄청난 낙태가 이뤄진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혼여성의 경우 낙태는 자신과 남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유발에 따른 결혼 및 출산 기피증을 부를 수 있다. 또 떳떳하지 못한 낙태는 임신 불능의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미혼여성들의 낙태가 허다한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性)개방 및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풍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혼여성의 낙태는 부주의 탓도 있겠지만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려는 쪽이 더 커 보인다. 결국 낙태를 막고 출산율을 높이자면 셋째아이 출산 지원금을 준다는 식의 미봉책이 아닌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성이 소유가 아닌 놀이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사실을 직시, 임신과 출산에 따른 책임 등 청소년 대상의 성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출산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배 부른 여성에 대한 안쓰러운 눈길 및 아이를 맡길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출산지옥 낙태천국'의 오명을 벗을 길은 요원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