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만한 반도체 칩 하나가 대용량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컴퓨터를 대체할 날이 현실로 다가왔다. 삼성전자가 지난 2001년 일본 도시바의 제휴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적으로 시작한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이제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흐름을 뿌리째 흔드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12일 발표한 50나노 16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반도체 극한기술이 집약된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 60%가 넘는 시장 지배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용량 제품을 앞세워 향후 반도체 시장은 물론 모바일 및 디지털 전자제품 시장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한층 높일 수 있게 됐다. ◆'플래시 러시' 시작됐다 "19세기 미국의 골드 러시(Gold Rush)에 버금가는 플래시 러시(Flash Rush)가 가속화될 것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이번 16GB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로 향후 모든 모바일 기기가 플래시 메모리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에 이어 디지털캠코더 PMP(휴대용뮤직플레이어) 카내비게이션 등으로 낸드플래시 수요가 급팽창할 것이라는 의미.여기에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에서도 낸드플래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애플에 나노 공정을 이용한 낸드플래시를 100만대 이상 공급했으며 향후 노키아 등 경쟁업체에도 낸드플래시 공급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시장조사 기관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은 2001년 14억달러에서 2004년 70억달러를 기록하며 연평균 70% 이상의 고성장세를 보여왔다. 황 사장은 "올해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 매출은 지난해 41억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64억달러로 예상된다"며 "이는 모든 경쟁업체들의 낸드플래시 매출을 합친 것의 1.7배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매출은 2001년 4억달러,2002년 11억달러,2003년 21억달러,지난해 41억달러로 급성장해 왔다. 올해도 6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지속하면서 메모리 사업부를 선두에서 견인하는 핵심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메모리·비메모리 동반성장 삼성전자는 이날 업체 최소형 제품인 720만화소 CMOS 이미지센서와 메모리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시스템 LSI(비메모리)가 융합된 퓨전 반도체인 고용량·저전력의 모바일 CPU와 MP3용 솔루션,카드용 솔루션 등 세 가지 제품을 개발해 양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체'로 여겨져 온 비메모리 부문도 집중 육성,메모리와 비메모리의 동반 성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다시 입증된 '황의 법칙' 2002년.황 사장은 국제반도체학회(ISSCC) 총회 기조 연설에서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했다. '1년6개월마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확대된다'는 '무어의 법칙' 대신 '1년에 2배씩 집적도가 늘어난다'는 이론.이른바 '황(黃)의 법칙'이다. 삼성전자는 '황의 법칙' 발표 이후 지난 99년 256MB 낸드플래시에 이어 2000년 512MB,2001년 1GB,2002년 2GB,2003년 4GB,2004년 8GB를 개발하며 세계 플래시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99년 220나노 공정,2002년 90나노 공정을 통해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상용화에 나섰다. 그리고 올해 삼성전자는 50나노 공정을 이용한 16GB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반도체 역사를 새롭게 썼다. 황 사장은 "기원전 105년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 최대의 정보전달 매체 혁명"이라며 이번 개발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50나노 기술을 기존 16GB뿐만 아니라 8GB와 4GB 낸드플래시에도 확대 적용,오는 2010년 총 3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