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들 '市場 타령'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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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최근 한국 기업의 설비투자가 부진한 반면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활기를 띠고 있다는 뉴스를 많이 접한다.
이런 뉴스를 통해 그만큼 우리 기업들이 투자에 매우 신중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좋은 뉴스로 들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감도 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최근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주요 일본 기업의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약 12%,제조업만을 보면 20%에 육박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투자내용도 매우 건실하다.
단순한 기존 제품의 생산 확대만이 아니라 신제품 개발이나 기존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투자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국민계정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줄곧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던 설비투자가 2004년 7% 증가했고 설비투자 규모도 약 99조엔으로 1990년의 90조엔을 크게 상회한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 기업의 투자 확대를 잘 대변해준다.
한 건설 대기업의 대주주는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배당이 크게 늘어 자금흐름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외교관은 지난 10여년간 준비해 온 일본의 기술과 상품이 세계 시장을 리드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일본 민간연구소의 분석가는 과잉채무,과잉설비가 거의 해소됐다고 단언했다.
이들의 말을 곰곰이 새겨 보면 최근 일본 기업이 투자를 증가시키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배당이 늘었다는 것은 수익이 증가했다는 것을,세계 시장을 리드할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은 기술과 상품을 준비해 왔다는 것을,과잉채무·과잉설비가 해소됐다는 것은 새로운 투자 증대를 위한 체질 개선이 완료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 기업의 최근 투자동향을 살펴보면 마치 90년대의 일본 기업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상황이 비슷하다.
중소기업은 수익성이 저하돼 투자 여력이 낮아졌고 그나마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대기업의 투자성향은 90년대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영업이익 대비 설비투자 비율은 외환위기 이전의 150~200%에서 2004년 69%로 크게 하락했다.
수익성이 좋은 대기업이 여유자금을 투자가 아니라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한 해 동안 상장기업은 무려 10조원의 부채를 상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거시경제는 현재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미 잠재성장률이 4%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현재 우리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처가 없다는 것은 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배당을 늘리고 부채를 상환했다고 해서 기업 경영의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급변하는 국제경제 환경 속에서 기존 사업 기반이 순식간에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조립·가공형의 산업 기반만으로는 장기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도 없다.
이들 분야는 이미 중국이 크게 잠식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 증대로 인한 경기 회복도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업의 창조적 활동이다.
우리 기업은 모방을 통한 성장이 이미 한계에 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 기업은 현재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 기업이 이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새로운 도전과 창조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기업에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