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4:53
수정2006.04.03 04:55
"어디서 MBA(경영전문대학원석사 학위)를 따느냐보다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가 중요해요.
기업들이 MBA 간판만 보고 사람을 뽑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딜로이트 컨설팅 1년차 컨설턴트인 이미숙씨(30)는 2005년 국내 MBA스쿨 졸업자들 사이에서 '신데렐라'로 꼽힌다.
국내 MBA스쿨인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버드 와튼 등 해외 명문 사립대학의 MBA스쿨 졸업자가 대거 몰린 딜로이트 컨설팅 입사시험에서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것.이씨의 첫해 연봉은 5500만원 선.전 직장인 포스데이타에서 받았던 연봉(260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시절만 해도 이씨는 평범한 구직자였다.
서류전형에서 '물'을 먹은 일이 부지기수.취업전선에서 오래 고생한 이씨가 가까스로 취업한 곳이 포스코 계열사인 IT 솔루션 업체 포스데이타였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그녀는 혹독한 경험을 해야 했다.
동기 대부분이 전산이나 컴퓨터를 전공한 반면 그녀만 동떨어진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JAVA 중급과정 등이 신입사원 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전산 전공 동기들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저는 아무리 책을 봐도 내용을 모르겠더라고요.
업무과정 혁신팀(PI팀)에 배치받았을 때도 막막했어요.
90명 가운데 여자는 저 하나였지요.
일도 못하고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힘들어 바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씨는 질 수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계속하며 업무를 익힌 것은 기본.기관지가 약해 담배를 못 피웠지만 선배들이 "한 대 피우러 가자"고 할 때마다 따라갔다.
인간적으로 친해져야 일도 잘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3~4개월 정도 지내다 보니 선배들의 도움으로 업무 파악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미숙이 프로그램도 짠다'고 놀리던 동기들도 점점 저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쯤 직장생활을 했을 때 그녀는 MBA스쿨행을 결정했다.
경영진들이 실무자의 말은 귓등으로 들으면서 외부에서 온 컨설턴트의 조언은 메모까지 해가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나도 컨설턴트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처음에는 이씨도 대부분의 직장인처럼 해외 MBA스쿨을 생각했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비쌌고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해외 MBA스쿨을 나온 사람 중 상당수가 연봉도 얼마 올리지 못하고 원래 근무했던 회사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2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용 회수도 힘들겠다 싶어 국내 MBA스쿨 쪽으로 마음을 돌렸지요."
이씨는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MBA과정 시절을 '사람 잡는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교수들은 매주 7~8개씩의 프로젝트를 주고 이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부분의 학생은 학업을 따라가는 것으로도 벅차 다른 일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조금 더 이를 악물자'고 마음먹었다.
대학원 2년차 무렵부터 그녀는 '이력서 늘리기'에 집중했다.
"졸업할 무렵이 되니 나만큼 이력서가 빼곡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제 유일한 자산이었으니까요.
저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해줄 회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딜로이트가 제가 찾던 바로 그곳이었지요."
이씨에게 다음 꿈을 묻자 "CEO가 되는 것"이란 야무진 대답이 돌아왔다.
"컨설턴트로서의 경험을 쌓고 기업의 임원으로 이직한 후 CEO가 되겠다는 세부 시행안을 세웠어요.
꿈은 구체적으로 꿔야 이뤄지거든요."
딜로이트 컨설팅의 이종이 이사도 '새내기 컨설턴트'인 이씨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이미숙씨의 경우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 어떤 일을 맡겨도 깔끔하게 처리한다"며 "업무능력만 놓고 보면 해외에서 MBA를 따 온 컨설턴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
글=송형석·사진=김정욱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