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가전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디지털 가전 제품 가격이 자유낙하하고 있다. 미국에선 2만5000원짜리 DVD플레이어가 나왔고 일본에선 32인치 LCD TV가 곧 140만원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기술 평준화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의 확산이다. 유통업체와 비(非)가전제품 회사들도 마음만 먹으면 가전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불가능한 마진율'에 도전하는 저가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가전제품 가격 자유낙하 일본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22일자)는 "디지털 가전 가격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 일본에 제2의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지경"이라고 보도했다. 무선전화 회사인 일본 유니덴은 오는 10월 32인치 LCD TV를 소니나 파나소닉 제품의 절반 가격인 13만9800엔(140만원)에 출시할 예정이다. 전자부품업체 간다전자도 올 가을 20~32인치 LCD TV를 유니덴 제품과 맞먹는 가격대에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일본의 대형 슬림 TV 가격이 일순간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미국에선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바이가 자사 상표(PB) '인시그니아'를 붙인 26인치 LCD TV를 999.99달러(100만원)에 팔고 있다. DVD레코더의 가격 하락속도도 TV 못지 않다. 일본의 경우 최근 3년 사이 평균 10만엔에서 5만엔으로 떨어졌고,미국에선 24.99달러(2만5000원)짜리 대만제도 나왔다. ◆기술평준화·OEM 확산이 촉매 가전 업계에선 무명에 가까운 이런 회사들이 첨단 디지털 가전 제품을 대량 판매할 수 있는 것은 기술 평준화와 OEM의 힘이다. 유니덴은 TV 제조 노하우가 전혀 없지만 고작 40명의 인력을 투입해 1년 만에 LCD TV를 개발해냈다. LCD TV 기술 핵심인 LSI(대규모집적회로)칩은 일본 내 반도체회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패널은 대만 치메이전자에서 사왔다. 조립은 모두 중국 공장에 맡긴다. 베스트바이 TV는 일본 업체 및 한국 LG·대우전자가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또 직접 판매 방식을 이용해 유통 비용도 혁신적으로 낮췄다. 저가 DVD플레이어와 브라운관TV로 미국 AV시장을 석권한 일본 후나이의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1억6000만엔의 매출을 올리지만 직원은 60명만 두고 있다. 직접판매 방식을 사용하는 이 회사의 매출 대비 판매비용 비율은 업계 평균 25%보다 절반 이상 낮은 11%에 불과하다. ◆한계업체 간 M&A 가속화 가격하락이 가속화되면서 한계 상황에 놓인 가전 업체 간 인수합병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미국 RCA,제니스,웨스팅하우스(가전부문)가 각각 중국 TCL,한국 LG전자,대만 치메이그룹에 넘어간 데 이어 현지 3위였던 메이택은 22일 이사회를 열고 동종기업인 월풀에 경영권을 넘기기로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월풀의 메이택 인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비용을 낮춰 LG전자 같은 아시아 저비용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분석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