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학력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잘 살피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마음먹은 것을 실천할 때 발휘되는 것입니다."


강기성 부산정보대학 학장(65)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지만'전자유통업계의 대부''강소평''박사 두뇌'로 불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도전 인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갈 형편이 안 된 14살 때부터 시작됐다.


"친구들이 책가방 들고 학교에 갈 때 저는 고령토 광산에서 저녁 늦게까지 중노동을 했습니다.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절도 잠시.고령토 경기가 나빠져 임금이 체불되자 그는 1956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 온 후 그는 무작정 전파상에 들어갔다.


전자 분야가 유망하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장래를 맡긴 것.


손재주는 뛰어났지만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영어가 잔뜩 쓰여진 라디오 부품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오기가 생긴 그는 가게에 야전침대를 놓고 지내면서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1년간 하루 3~4시간만 자는 강행군을 계속하자 라디오뿐만 아니라 TV 수리를 할 정도로 실력이 늘어갔다.


마침내 72년 가전 대리점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 한구석은 항상 비어 있는 듯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공부에 목말라 있던 강 학장은 직접 육영사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육영사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땅을 구하려다 사기에 휘말릴 뻔한 일도 있었다.


고생 끝에 85년 인수한 대학은 운동장도 없이 덩그러니 건물 두 채만 놓여져 있어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지막 사명'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학교 재건에 온 힘을 쏟았다.


2001년 아예 학장으로 취임해 경영 일선에 나섰다.


이후 실력 있는 교수를 초빙하고 산업계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정보중심 대학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그 결과 올 2월 졸업한 학생 2300명 가운데 450명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등 98.3%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