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들어가다간 총격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국가정보원 도청 수사를 지휘하는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19일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기자들에게 건넨 농담이다. 사상 최초로 국정원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의 '부담감'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가최고정보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검찰은 유재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포함한 검사 8명과 외부 통신 장비 전문가를 비롯 40여명에 달하는 압수팀을 편성,이날 오전 9시께 승용차 승합차 등 7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국정원 청사에 진입했다. 한 장소를 압수수색하는 데 검사 8명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압수수색에 수사관들만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안이 중요하더라도 검사 1명이 현장을 지휘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압수 수색은 오후 7시30분까지 10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검찰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압수 수색할 경우 길어야 3~4시간을 넘지 않았다. 검찰의 결연한 수사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주요 압수수색 장소는 감청을 담당했던 부서로 2002년 10월에 해체된 과학보안국의 후신에 해당하는 사무실과 예산 관련 부서 등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컴퓨터 본체와 도·감청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자료를 확보,정밀분석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압수수색을 통해 도청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입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국정원이 2002년 3월 감청을 중단한 이후 관련 자료를 한 달 내에 모두 없앴고 같은 해 10월 과학보안국도 폐지했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수사대상인 국정원이 도청사실을 자백한 지 2주 만에 압수수색이 단행된 것을 놓고 말이 많다. 수사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여론에 밀려 '체면치레용'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안기부 도청자료가 법무부 차관 사표로 이어지는 등 검찰 비리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국면전환 목적으로 압수수색이란 카드를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국정원은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원은 국익을 위해 묵묵히 일해 왔음에도 과거 일부 잘못된 일로 압수수색을 받게 돼 착잡해 하고 국가 정보 역량이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